4. 오운 육기 4

4.

내가 “음양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음양이란 “黃帝內經“에는 어떻게 씌어 있고, “醫學入門“에는 어떻고, 어떤 책에는 어떻고… 지금은 말들이 너무 어려워요. 또 너무 현학적입니다. 어렵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용어의 난해성을 즐기려는 태도, 高踏적인 모우션 등은 학자적인 생의 괴로움만을 연출합니다. 고인들의 교수방법에 등장하는 수많은 예와 일화 등은 진리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재치 넘치는 이야기지요. 사라져 가는 교수방법의 개발은 매우 시급합니다. 동양학이 재미 없는 학문이라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쉬운 전달 방법을 찾지 않는 가르침은 교사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우선 음양과 사랑에 관한 여러분들의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단편적이나마 東西洋의 견해를 레이 탄나힐 여사의 “성의 역사(Sex in history)”라는 저서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중국편

중국에서는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룬 상태를 라고 일컬었다. 도의 개념을 중심으로 발전된 철학이 道敎이다. 도교 사상가들은 인위적으로 짜여진 인간사회에 속박되지 않고 자연과 완전한 조화를 이룸으로써 장수와 행복, 심지어 永生까지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은 각자의 존재 속에서 자연 속의 음양 조화와 같은 조화를 자기 속으로 이룩해야 하며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서로 접촉하고 서로 흡입함으로써 음양의 두 요체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상반되는 두 힘인 음과 양은 여러 자연현상 속에서 볼 수 있다. 달과 겨울은 음이고, 해와 여름은 양이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여자는 완전한 음이 아니라 ‘少陰‘이며 남자 또한 완전한 양이 아니라 ‘少陽‘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서방에서는 물론 중국에서도 여러 가지 오해가 퍼져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가장 수동적인 여자에게도 양의 요소가 있고 가장 능동적인 남자에게도 음의 요소가 있다는 심리적 측면의 진리를 인식한 데서 나온 결론이었다.) 남녀 다같이 이 보조적인 요소가 원래적 요소를 보완하고 강화한다는 생각은 도교와 성에 관한 중국인들의 모든 사고를 발전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인도편

카마수트라(Kama sutra 인도말로 Kama는 사랑을 뜻하고 Sutra는 경전을 뜻하는 말로 인도의 성에 대한 경전이다)에서 사용된 ‘사랑’이란 단어는 한숨과 그리움, 요염, 가짜 열정, 또는 오비디우스에서 처럼 호색적인 거래를 위한 계산된 책략 같은 게 아니었다. 뭔가 그 이상의 거창한 것이었다. 철인 바챠야나(카마수트라를 편찬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는 분명히 오묘한 감정의 뒤얽힘도 인정하긴 했다. 하지만 그는 더 나아가 사랑이란 말 속에서 남녀간의 화학적인 반응을 인식했다. 그 반응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과 신경을 몽땅 사로잡아 그 밖의 것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를 뜻했다. 그것은 사랑을 할 때는 언제나 일어나는 현상일 뿐만 아니라 사랑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었다. 이 철인은 성 교본을 써가는 도중에도 이른바 어떤 규칙이란 게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또 아내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떠나서 남자는 반드시 ‘사랑 받는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걸 지적했다(3장 1절). 카마수트라는 연인들에게 등급을 따지지 말라고 건의하면서도 사랑 자체를 분류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랑을 만족할 만큼 분류하지는 못했다. 카마수트라에 따르면 사랑에는 4개의 유형이 있었다. 우선 성교만을 목적으로 하는 단순한 사랑, 이는 습관이나 약물과 같은 것으로 도박군이 도박을 사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음엔 키스 포옹 구강섹스처럼 특정 행위에만 집착하는 사랑이 있다. 다음엔 두 사람이 자석처럼 서로 이끌리는 사랑, 이것은 본능적이고 자발적이며 소유적이다. 마지막으로 상대의 아름다움에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일방적인 사랑이 있다(2장 1절).

유럽편

유럽 궁정식 사랑의 대표적인 인물로 길뎀(Guilhem)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서방기독교권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이었다. 그는 아랍의 영향을 받은 스페인의 연애시와 사랑의 철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관능과 유혹적인 생활에 익숙했기 때문에 그것을 깊이 고민하면서 그 문제에 대한 숙고의 결과를 시로 표현했다. 그는 주장하기를 ‘사랑은 굴종이 아니라 의기의 고양이요, 더러운 죄악이 아니라 신성한 신비요, 사랑의 선물을 받은 귀부인은 찬양 받아야 할 여신’이라고 했다. 몇몇 학자들은 그의 이 같은 관점의 변화에서 빈정댄 듯한 편의주의의 낌새를 배제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쨌든 마음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성문제에 대한 이런 불확실성은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복합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자주 논란이 되고 있지만 성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하는 시기는 풍요를 구가하는 시대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목적을 갖지 못하는 시기임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성이 지나치게 중요시되던 때는, 더 이상 정복할 곳이 없어진 국가의 ‘황금시기’였다. 로마제국 굽타제국 중국의 청대 루이 14세 때의 프랑스 영국의 후기 빅토리아기가 그 예이다. 그런 한가한 시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성적인 데로 쏠리게 되면 어떤 이들은 그것이 도덕적인 타락의 징조라고 개탄한다. 많은 사람들은 성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때로는 전부인 양 행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20세기가 되면서, 역사상 최초로 나타난 매스컴의 영향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상에서 우리는 東西洋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음양에 대한 인식을 고찰해 보았습니다. 결코 어려운 문구로 된 심오한 사상이라든가 논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습관 풍습 등이 진실을 이해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여러분들에게 간략히 소개한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평범하고 통속적이랄 수도 있는 이런 생활사에서 인생의 진실을 캐기 위해서는 직관의 개발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직관의 개발을 위해서는 예화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음양관을 배울 때 굉장히 어렵지요? 相生이 어떻고 相克이 어떻고 하는 것은 순전히 말장난입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개인적으로 선생님을 찾아 공부할 때는 그러질 않았습니다. 약간은 고지식하게 설명하시더군요. “선생님, 滑石이 왜 변비에 좋고, 또 애기를 낙태시킵니까?” 하고 학생이 질문을 하자, “먹어봐, 만져봐, 미끌미끌 하잖아. 지가 어디로 가겠어? 大腸에서 활동을 잘 할 것 아냐, 그러니까 매끄러울 자를 쓴 거 아냐? 고인들이 미쳤다고 미끄러울 자를 썼겠어?” 그러자 학생들은 그 말을 들으며 “어휴! 저러니까 한방이 개화가 안되고 시대에 뒤진다고 하지”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유기화학시간처럼 C.H.O가 어떻고 이렇게 육각형(벤젠고리)도 그려 넣고 했으면 여러분들은 귀가 솔깃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로 무얼 하자는 이야기입니까? 이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탄소원소와 금강석의 원소는 똑 같습니다. 원소가 같은 것이라 성분이 밝혀지는 것(다 밝힐 수도 없지만)은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겐 실험분석 기구보다 더 뛰어난 눈입 그리고 직관이 있습니다. 컴퓨터가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보다는 못합니다. 직관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의 순진무구한 눈, 생각 이전의 消息, 깨어 있는 마음, 지식이 개재되지 않은 마음, 공포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마음, 미래의 희망에 들뜨지 않는 마음, 겸손한 마음, 교만하지 않은 마음…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기화학식으로 설명을 해주면 잘 아는 것처럼 인식이 되고, “먹어봐! 매끌매끌 하잖아. 그런데 애기가 안 나오겠어?”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우습게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옛날 선생님의 그러한 설명들이 한 10년 뒤에는 이해가 가더군요. 단순한 논리이지만 이렇게 인생의 진리가 숨어있는 예화를 많이 들으면 차차 심오한 음양 감각에 익숙해집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許浚(조선 중기의 한의학자이며 선조 때의 전의. 선조의 명으로 의서 편찬에 착수 광해군2년(1610) “동의보감”25권을 완성. 이 책은 동양 최대의 의학서로서 당시 일본 중국에서도 널리 익힘)선생님은 말년에 낚시를 좋아했습니다. 그 분이 살생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향토에 있는 약초를 발굴하기 위해서 낚시를 핑계로 전국을 돌아다녔지요. 하루는 제자를 데리고 수원근처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 사이에 명의가 왔다고 소문이 좌악 퍼졌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낚시에 바늘도 달지 않고 음풍농월을 즐기거든요. 여러분! 허준선생님을 가볍게 생각지 마십시오. 그 분은 도인이셨습니다. 그 유명한 “東醫寶鑑“을 저술하시면서도 옛 사람의 말을 한가지라도 바꾼 것이 있습니까? 한 마디도 바꾼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보니까 옛 사람의 표현방식이 딱 맞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허준 선생이 있던 수원 근처의 낚시터로 어떤 부인이 시름에 찬 얼굴로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참 용하시다는데 제 소원을 좀 들어 주십시오” “무엇이오?” “결혼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애기가 없는데 애기를 가질 방법이 없을까요?” 그러자 선생은 그 여인을 한 번 쓱 보더니 “이슬을 하루 한 되 씩 100일 동안 잡수시오”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 여인은 100일 동안 이슬을 먹고 난 10개월 후 애기를 낳았습니다. 임신 못하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슬을 먹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임신을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허준 선생이 전국을 한 바퀴 돌다가 그 동네를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임신 못한 아낙네들이 몰려와서 “아니, 선생님! 우리는 왜 임신을 못합니까? 선생님 처방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허준 선생이 “무슨 이슬을 잡수셨소?” 하고 물으니 “애기 낳는 게 제 소원이라 새벽이슬을 먹었습니다” “그럼 새벽 이슬을 잡수셨단 말이오?” “네 물론입니다” “저녁이슬을 잡수셔야지 새벽이슬은 안됩니다”라고 점잖게 말하고 되돌아 갔습니다. 이런 걸 우화라고 합니다. 혹시라도 좋은 처방 배웠다고 써 먹지 마세요. 우화란 그 속에 들어 있는 비유만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새벽이슬은 풀 끝에 달렸다가 태양이 뜸으로 해서 막 발산되려는 이슬이고, 저녁에 맺힌 이슬은 하루의 생성과 성장이 모여 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임신과 그 의미가 같은 것이지요.

임신을 시키는 데에 신맛이 좋겠습니까? 단맛이 좋겠습니까? 아직 여러분 육경의 맛에 대해 아무런 공부를 안 했지만 그냥 생각해 봐도 왠지 신맛이 적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러나 이것을 뚱뚱한 사람에게 가르쳐주면 큰일납니다. 신[]맛은 거두어 들이고 매운[] 맛은 발산을 시키지요. 그러므로 해삼장사들이 해삼을 싱싱하게 보이게 하려고 식초를 뿌립니다. 신맛이 마른 사람에겐 좋지만 뚱뚱한 사람에게 쓰면 안되지요. 오미자가 불임병에 좋다고 하는데, 五味子木果 같은 신[] 약을 마른 사람에게 쓰는 것은 좋으나 뚱뚱한 사람에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이 많은 신맛으로 물을 더 넣어주면 큰일이지요. 뚱뚱한 사람은 물꼬를 내고 利水를 시켜 물을 빼주어야지요. 옛날에 조조가 적군에게 쫓길 때 군사들이 심한 갈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저 산만 넘어 가면 살수(신맛)가 있다고 하자 병사들의 입안에 침이 고이게 되어 잠시 갈증을 잊고 무사히 산을 넘어 후퇴를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것이 ‘韓方‘입니다. 이것이 바로 ‘陰陽觀‘이고요. 그런데 이런 것을 외우거든요. 이치만 알면 아무것도 아닌데 외워서는 결코 깨우치지 못합니다.

어느 날 허준선생에게 한 여인이 달려와서 “우리 며느리가 애기를 낳고 있는데 애기가 나오질 않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하자 이끼 낀 여울목의 돌을 한 솥 삶아서 그 물을 먹이라 했지요. 그랬더니 글쎄 순산을 했습니다. 이걸 보고 제자가 “石室秘綠(청나라 진사탁(우경지, 호원공, 산음인)의 저서로 모두 6권으로 되어 있음. 주된 사상으로는 128법을 나누어 방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보신 보비 서간에 치중하고 있음), 傷寒論, 黃帝內經 어디에도 없는 처방인데 어찌 제겐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까?” 하자, “너에게 수없이 가르쳐 주었건만 네가 이 없어서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 것이다”라며 꾸짖으셨다 합니다. 또 한 여인이 달려와서 “선생님 우리 며느리도 애가 나오지 않습니다”고 하자 그 집에 가서 산모를 보더니 “이것 참 큰일났군”하고는 산모의 머리채를 풀어서 입에다 넣었어요 그러자 여인이 구토를 하더니 또한 순산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무턱대고 이렇게 따라 하면 큰일 납니다.

앞의 부인은 羊水不足(요즘 말로는 早期破水)이므로 빠르게 흐르는 여울목에 낀 이끼(매끄러움의 극치)의 매끄러운 성분을 썼던 것이고, 두 번째 경우는 산모의 腹壓不足이므로 구토법을 썼던 것입니다. 첫 번째 것은 양의사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두 번째에 대해선 아무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方藥合編下統 82번에 禹功散이라는 게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不拘時腹
小時以鷄翎探吐痰之…’ ‘닭 깃으로 목구멍 담을 뒤져서 催吐시켜라’라고 씌어있지요(禹功散의 상세한 내용은 뒤에서 다룸). 인체는 마치 처럼 되어 있어서 위를 뚫어주면 아래로 나오게 되어 있지요. 옛 사람들은 이 자연의 이치를 이용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대롱에 물을 넣고 위를 막으면 물이 밑으로 나오지 않지만, 위를 열어주면 대롱 속의 물이 주르르 흐르거든요. 그래서 옛날 서양산부인과 의사들 가방에는 언제나 닭 털(구토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또 변비에 걸렸을 때 우리 인체의 맨 위에 있는 百會穴에 침을 놓는 것이나 설사를 할 때 百會穴에 뜸을 뜨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바둑을 둘 때의 병법이 환자들 치료하는 방법과 유사한 것이 많습니다. ‘貪不得勝(탐욕하면 이길 수 없다)’라는 말처럼, 병을 고치겠다고 너무 욕심을 내면 병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남의 경계에 들어갈 때에는 완만하게 들어 가라’ 라는 것도 있습니다. 중병이라고 하여 처음부터 약을 너무 강하게 쓰면 안됩니다. 약은 서서히 써야 됩니다. 열병에 大黃이나 망초(芒硝) 같은 약을 조심 없이 쓰면 마구 타오르는 불에 어설프게 물을 잘못 붓는 격이 되므로 薰氣가 올라서 죽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을 치료하는 데는 작전이 필요합니다. 암을 치료할 때, 암 세력이 강한데 무조건 이기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적당하게 조화를 시켜줘야 합니다. 사소한 병이 중병으로 되기까지에는 하루 이틀 걸렸겠어요? 손자병법에도 ‘적의 10배가 되면 공격하여 죽이고, 두 배면 시기를 보고, 적과 비슷하면 화해하고, 적보다 수효가 적으면 도망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36계 줄행랑은 손자병법의 맨 마지막에 있는 방법입니다. 못 고치는 병은 못 고치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다 고치겠다는 욕심은 금물입니다.

맛()과 소리 ()와 형상이 六經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한 나라 언어의 성조를 듣거나, 노래를 듣거나, 어떤 사람의 행동상의 특징을 미루어, 각기 어떠어떠한 기운(어떤 경락)이 많이 작용하고 있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군가와 사랑노래, 교가가 각기 다른 분위기인 것은 각기 가진 기나 기운의 종류와 강약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수의 노랫소리만 들어도 ‘음~ 당신은 어떤 기운이 강하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한의사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동양의학자입니다. 이렇듯 약초의 맛, 냄새를 딱 보고서 추리할 수 있고, 목소리를 듣거나 형상, 모습을 보고서도 알 수 있는 추리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오운과 육기가 혼합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달마대사(중국 선종의 초조. 남인도 향지국왕의 셋째아들로 본명은 보데다라. 520년(양나라 보통1년) 중국으로 건너와 소림사에서 면벽9년하고 2조인 혜가에게 법을 전한 뒤 영안1년의 10월 5일에 입적함. 당나라 대종이 원각대사라고 시호를 내림.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보리달마”라 불림) 시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외부에 있는 일체의 모든 인연을 쉬고 (外息諸緣)

안으로 헐떡거리는 마음을 쉬어라.(內心無喘)

마음이 마치 장벽과 같이 단단하면(心如墻壁)

가히 도로 들어간다.(可以入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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