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오운 육기 8

8.

여러분! 熟地黃 밭에 무엇이 들어가면 다 말라 죽습니까? 무우가 들어가면 熟地黃이 다 말라 죽게 되지요. 옛 부터 전해오는 것 중에 熟地黃 먹고 무우를 먹지마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무우를 식물학상으로 볼 때 어느 부분이 성합니까? 또 무우를 던졌을 때 어떤 부분이 먼저 떨어집니까? 물론 아래 부분인 뿌리가 먼저 떨어지겠죠.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것을 종합해 본다면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어디로 작용하는지 짐작이 갈 겁니다. 우리가 무우를 먹었을 때 트림이 먼저 나옵니까? 방귀가 먼저 나옵니까? 트림부터 먼저 나오지요. 무우가 소화된다는 것은 기를 위로 올림으로써 아래가 뚫리는 즉 기를 위로 상기시키면서 消食시키지요. 그런데 熟地黃은 어떤 작용을 합니까? 補血, 補陰 시키는 작용을 하지요. 그러니까 기를 위로 상기시켜 주는 것과 補陰시키는 것을 한데 섞어놔 두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새로 개업한 똑똑한(?) 젊은 한의사들은 “괜찮아요. 옛날 사람들이 그저 모르고 한 소리니까… 과학적인 근거가 없거든요” 이렇게 곧잘 이야기합니다.

제발 여러분들 만큼은 이렇게 똑똑한 한의사가 되지 마세요. 얼마 전에 어느 대학교 연구팀이 녹용에 대해서 연구발표를 하였는데 “녹용은 약간의 제라틴 성분과 섬유질 성분 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을 사용하고 있는 한방의학이 한심하다” 그러더군요. 그러고는 뒷 구멍으로 자기 자식을 歸脾湯 먹이고, 얼마나 우습습니까? 정말 녹용에는 약간의 제라틴 성분과 섬유질 밖에 없을까요? 왜 옛사람들이 녹용을 사용했을까요? “개에게 돌을 던지면 돌을 쫓아 다니고 사자는 바로 사람을 문다(韓盧逐塊獅子咬人)”고 했거든요. 녹용을 알려면 사슴을 관찰해야지요. 녹용은 좋아하면서 사슴은 관찰하지 않거든요. 사슴의 생태를 잘 관찰하면, 녹용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여러분! 돼지가 陽的인 동물입니까? 陰的인 동물이겠습니까? 돼지를 足厥陰肝經에 배속을 시켜놓았지만 어떤 기준에 의해서 陰的이 될까요? 우선 많이 먹는다는 측면에서는 陰的이 되겠지요. 무엇이든지 취하려는 기운은 강하고 내 놓으려는 기운은 별로 없지요. 돼지가 방귀를 뀌거나 트림을 하는 것 보셨습니까? 이런 것들은 모두 자기에게서 나가는 것이므로 잘 내놓질 않죠. 그런데 스컹크나 오징어 같은 것은 조금만 건드려도 내뿜습니다. 그러면 이런 놈들은 △△之氣가 강하겠습니까? 어쨌든 이것이 少陽인지 太陽인지는 딱 잘라 구별하기가 어렵지만 들어 마시는 쪽보다는 내 쏘는 쪽이 강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돼지는 흡수하는 기운이 강한 것으로 보아 陰的이지요. 이렇게 본래 陰的인 돼지의 신체구조 중에서 제일 아래에 돼지 족발을 쓰게 되니까 몸에 물이 고이겠습니까? 안 고이겠습니까? 그러니까 四物湯과 돼지족발을 잘 쓰면 여자들 젖 안 나올 때 좋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다리부분과 머리 부분을 비교해 볼 때 어느 부분이 이 될까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머리 부분이 이 될 것입니다. 사슴을 보면 아주 짧은 털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추위를 잘 견디고 오히려 눈에서 막 뒹굴지 않습니까? 눈 위에서 뒹굴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가 덥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옛 사람들은 사슴의 生態를 관찰하고 사슴의 경락을 관찰한 거지요. 그러면 경락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관찰해야 그 특징을 알 수 있을까요? 물론 사슴의 성격을 알아야지요. 사슴은 옆에서 바스락하는 소리만 나도 잘 躁動하고 튑니다. 잘 튄다고 하는 것은 陽的일까요. 陰的일까요? 일단은 陽的이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그러니까 사슴고기 많이 먹고 녹용 많이 먹으면 아무 일에나 잘 놀래고 반응이 빠르고 괜스리 민감해집니다. 어린아이들한테 몸이 더울 때 녹용을 쓰면 부작용이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감기 뒤끝에 餘熱不退했을 때, 녹용을 쓰면 안됩니다. 세간에 떠도는 녹용 먹고, 부작용 났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한의원에 식물학을 전공한다는 여학생이 왔길래 사과와 배 중에서 어느 것이 건조한 땅에 잘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더군요. 그러나 우리 대충 생김새, 맛, 색깔만 보더라도 그것의 정체를 알 수가 있지요. 바로 이것이 사물의 말미만 보고도 근본을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五運六氣의 근본 또는 상황을 보자는데 있습니다. 앞에서 제가 “內經“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만 상황을 깨어서 단순하게 보자는 것이 저의 근본 뜻임을 여러분들은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모든 氣運이 교차하는 곳을 1차로 입술, 즉 任脈督脈이 만나는 자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 氣交하는 곳은 배꼽()이지요. 이 때에 五運六氣에서는 배꼽 위와 배꼽아래로 나누어서 보지요. 로 나누어 볼 때 天干이 지배하는 것은 계절 같은 것을 말하고, 地支는 그때 그때에 변하는 기후 같은 것으로 변수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우리가 陰陽을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이것을 10으로 넓혀서 분류한 만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더욱 더 연구하여 산술학적으로 발전한다면 이것을 20으로 분류한 사람도 나올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사주를 볼 때 를 따져서 어쩌구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이 꼭 100% 맞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루 중에도 가 있는데 예를 들어 子時라고 하여 꼭 춥겠습니까? 한여름 밤의 子時는 춥지 않지요. 또 午時는 춥거든요. 그렇다면 사주라고 하는 것이 꼭 맞는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만약에 사주가 전부 맞는다고 하면


가 똑같고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하면 그 사람들의 운명도 똑 같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예를 들어 子時라고 하면 이 두 시간 안에 태어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당나라 시대 때의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당대에 배휴와 배탁이라고 하는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일란성 쌍생아 였습니다. 그러니까 얼굴 생김새가 똑같았지요. 둘이 태어날 때 등이 붙어서 나왔으니까 거의 동시에 나왔지만 배휴가 발을 먼저 디뎌서 형님이 되고 배탁이 동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쌍동이의 부모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세상을 떠나 하는 수 없이 외삼촌 집에서 배휴와 배탁은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동생인 배탁은 외삼촌 집에서 도망가버리고 형인 배휴만 남게 되었지요. 이 쌍동이는 어찌나 못생겼던지 둘 다 이빨은 완전히 옥니박이에다가 머리털은 하늘로 뻗치고 눈썹은 송진 붙여놓은 것 같고 인상은 항상 찌부러져 있고, 너무 못생겼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가까이 하려고 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어떤 스님이 지나가다가 배휴를 보더니 “저 아이가 있으면 이 집안이 망하게 됩니다” 하고는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는지 모르지만 옛날 할아버지나 할머니께서 집에 가정부가 잘 들어오고 못 들어옴에 따라 집안이 흥하고 망한다고 하는 ‘덩어리’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 집에 업 덩어리 하나 들어왔어” 그러거든요. 이 말 안에는 사람이 하나 들어옴으로 해서 우리 집을 잘되게도 못되게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거여요.

어느 날 가정부가 하나 들어왔는데 거지가 동냥하러 오면 며느리는 “아니! 사지가 멀쩡해 가지고 동냥하러 다녀요?” 하면서 내쫓아 버리는데 새로 들어온 가정부는 몰래 뒷구멍으로 거지를 불러서 쌀독의 쌀도 내주고 밥도 먹여 보내거든요. 또 어떤 때는 자기 돈으로 동네 할머니들 모셔다가 밥도 지어드리고 도시락도 싸 보내는 겁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아들이 하는 일이 잘 되고 집안의 분위기가 이상스럽게도 화평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또 어떤 경우는 파출부 하나가 집에 들락거리면서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 내가 어제 20원을 전화 거는 데 쓰고 나머지 80원 하고 토큰 두 개를 책상 위에 올려 놓았는데 찾아 보니까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 ‘동생이 가져갔나 보다’하고 “얘! 말자야. 내 책상 위에 토큰이랑 80원 가져갔니?” “아니? 세상에 나를 어떻게 보는 거야” 하면서 신경질을 냅니다. 그러면 혹시 엄마가 가져갔나 싶어서 “엄마! 혹시 책상 위에…” “얘! 치사하게 엄마가 그걸 가져가겠니?” ‘그렇다면 혹시 아빠가…아니야. 아빠가 가져갔을 리는 없어’ 그러면서도 의심이 딱 생기게 되는 거죠.

또는 아버지가 소중히 여겨온 만년필이 책상 위에서 없어진 것입니다. “차라리 돈 2~3만원이 없어지는 것이 낫지 추억이 담긴 만년필이 없어질게 뭐람”하며, 아들을 불러 세웁니다. “야! 이리와, 벌써 아버지 물건에 손을 대!!!” “아니예요. 저 필기도구 많아요” “어-엉! 그래? 그러면 아빠가 잘못 생각했구나”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왠지 석연치가 않지요.

엄마가 어느 날 아빠 드리려고 손수건을 사다가 부엌에 두었는데 그 손수건이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야! 너는 아빠 드리려고 손수건 사두었는데 네가 가지면 어떡하니?”하고 야단을 칩니다. “에이! 왜 자꾸 나만 가지고 매일 그래!! 나 안 훔쳤단 말이야” 자, 그러면 지금 이 집안에 전부 없어진 것을 합쳐보면 불과 몇 천원도 안 되는데 전부 의혹이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더니 이 집안이 망해요.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파출부가 들락거리면서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가져간 것이거든요. “야! 이 볼펜 좋다. 재수하는 우리 아들 갖다 주자. 또 손수건 챙겨서 우리 남편 갖다 주자. 이 토큰 두 개 정도야 이 집에서 괜찮겠지”하는 盜心이 발동한 거지요. 나중에 그것이 모두 파출부의 짓이라는 것이 들통이 났어요. 그래서 “아니 그런 짓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하니까 “뭐 전부 합쳐봐야 만원도 안되잖아요” 돈 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도심은 똑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한 사람으로 인해서 그 집안의 運氣가 바뀐거지요.

제가 아는 어떤 집에는 파출부는 3시간 일해주러 와서 6시간 일해주고 가고 아이들 노래도 가르쳐주고, 그림도 가르쳐주고, 책도 읽어주고 함께 놀아주니까 아이들이 안 떨어질려고 하는 겁니다. 나중에는 엄마가 질투가 날 지경이지요. 그러니까 아빠, 엄마의 기분이 좋아지고 또 집안에 대한 걱정,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안 하게 되니까 아빠는 사업에 전념할 수 있고 엄마는 학교 강단에 설 수 있고, 그러다 보니 파출부 한 사람 들어와서 집이 흥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옛날에 제 觀相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있는데, ‘觀相不如骨相이요. 骨相不如心相이라’ 관상이 뼉다구 만 같지 못하고, 骨相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마음 잘 쓰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心相이 중요한 거지요. 결국은 형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배휴라는 아이가 그 스님의 말을 듣고 외삼촌 집에 사는데 ‘ 덩어리가 된다’고 하니, 어린 마음에 서러운 생각도 들고, 걸식을 하고 다니더라도 이 집을 망하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두 가지 생각에 외삼촌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집을 나와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우물가에서 옥띠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으로 만든 허리띠인데 얼마나 비싸겠습니까? 이 옥띠를 본 배휴는 ‘이 좋은 물건을 잃어버린 주인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하는 생각에 사흘 밤낮을 꼬박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뛰어왔어요. 이 옥띠야말로 자기 아들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데 그 옥살이를 면제시키기 위한 뇌물이었거든요. 이 아주머니는 절에 가서 지성을 드린다고 우물에 와 목욕을 하는 새에 벗어 놓고는 집에 가서 옥띠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거죠. 이제 사흘이 지났으니 없으려니 하고 달려왔는데 이 친구가 지키고 있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래서 사례를 하려고 하니까 본래 아주머니 것을 아주머니가 가져가는데 무슨 사례를 하느냐고 필요 없다고 하면서 휙 가버리는 거예요. 요즘 같으면 1/10이냐, 1/100이냐? 하고 고소 붙을 판인데 그냥 가버리는 겁니다.

그러고는 여기저기 걸식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결국 외삼촌 집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힘이 들어서 도저히 거지 노릇 못하겠으니 외삼촌 집에 다시 있자고 이야기를 했던 겁니다. 외삼촌은 옛날에 스님에게서 들은 말이 있어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할 수 없이 허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옛날의 그 스님이 우연히 그 마을을 지나가다가 이 아이를 보더니 정승이 된다고 하거든요. 아니! 옛날에 집안을 망해 먹을 놈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정승이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이 아이의 운세가 바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진짜 나중에 한 나라의 정승이 되었어요. 그 스님이 이 아이를 보고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고 물으니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옥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스님이 “그래, 네가 네 운명을 바꾸었구나”하고 이야기하더랍니다.

그러니까 運氣라고 하는 것도 여러분들의 用心에 달린 것이지요. 너무 외부적인 것에 기대지는 마세요. 관상도 못 생긴 상에다가 生年月日時까지 나쁘고 또 身相까지 나쁜데 心氣를 올바르게 씀으로 해서 인생이 뒤바뀌지 않습니까? 그 후로 배휴가 자기 아우인 배탁이 궁금해서 수소문하여 찾아보니까 강나루에서 뱃사공을 하고 있더랍니다. 같은 뱃속에서 같은 시간에 똑같이 태어난 이 두 사람이 어떻게 이처럼 운명이 다를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이 五運六氣를 잘못 공부하고 나면 자칫 운명론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이 五運六氣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心氣로써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甲子年이라 하여 甲子年의 해석을 실컷 하고 나면 여러분들은 갑자년이라는 것의 해석에만 매달려 가지고 자기의 心相을 평정시키려는 생각은 안하고 ‘나는 갑자년에 태어났으니까 갑자 년생은 항상 바람을 피운다더라. 할 수 없다. 바람이나 피우자’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그건 그럴 수 있는 확률이 강하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는 사람이 왔다고 하면 관상가가 그 사람을 보자 마자 “당신은 어느 날 사람을 죽이겠소”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말을 들은 이 사람은 그 말이 한 생각이 되어서 자기 뇌파에 입력이 되고 자기 최면이 되어서 진짜 사람을 죽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길을 가는데 여인을 겁탈하려는 놈이 있어서 두들겨 패주었다고 하면 義氣 아닙니까? 그러니까 똑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좋게 해석해 주어야 하고 또 힘이 있어 보이면 힘의 사용처를 일러 주어야지 나쁘게 해석을 해주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에 전쟁이 터져서 우리 국민들을 막 죽이고 있는데 不殺生이라고 해서 적의 만행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신라시대 원광법사는 세속오계를 정하면서 ‘殺生有擇‘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佛經의 보살경에 보면 “백만명을 살리기 위해 열 명의 악질이 있다고 하면 그 악질을 죽이는 것이 보살행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지옥에 가더라도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 되겠다고 하는 마음이 보살이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五運六氣의 사상이 命理學 쪽으로 치우쳐서 운명론적으로 전락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후천적인 요소는 생각하지 않고, 선천적인 성품만을 가지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저는 불변이고 약간 운명론적인 선천보다는 후천적인 것이 70%이상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여러분들이 기억해야지요. 아무래도 선천적으로 잘못 태어나면 후천적으로 조심을 해야 됩니다.

롤스로이스나 링컨 컨티넨탈 같은 차를 물려 받았다고 하더라도 매일 200km이상 속력을 내고 아무데서나 좌회전, 우회전 하다 보면 사고 나서 죽는 수가 있지요. 사람이 선천적으로 튼튼하게 태어나고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교만 방자하여 못된 짓만을 일삼는다면 제명대로 못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선천은 롤스로이스 같이 좋은 것을 타고났는데 후천적으로 용심을 못하면 안되지요. 그런데 어쩌다 모범운전수가 되어서 얍실얍실한 포니차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매일 닦고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면 자식들 대학 보내고 딸 시집 보내고 저축도 착실히 하게 되니까 말년에 편안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물론 링컨 컨티넨탈 같은 차에다가 그런 운전수를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그런데 모든 이 우주의 운세라고 하는 것은 이 서로 상충되게 되어있거든요. 여러분들이 완전히 깨닫기 전에는 이 운기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날씨가 흐리고 바람도 없는 불쾌지수가 높은 날이라고 합시다. 외부의 이런 기운 때문에 마음은 많은 신경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심하질 않고 매운 것에 소주까지 한 잔 먹어 놓으면 이성을 잃어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괜히 시비를 걸어서 싸움도 하고 싶고 길가의 돌맹이도 집어 던지고 싶어지는 겁니다. 버스 안에서 싸움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 싸움은 불쾌지수가 작용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기후의 영향을 안 받는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천지의 가 작용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五運六氣의 피해를 안 받을 겁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있습니까? 결국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이상 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쉽게 이야기를 한다면 선천적으로 寒氣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비 오는 날 한 날을 싫어합니다. 뚱뚱한 사람들은 가을날을 좋아하게 되지만 여름이 되면 헉헉거리게 되고 아이스크림 먹고, 콜라 마시고, 선풍기 에어콘 다 틀어 놓아도 답답하다고 하지요. 그러나 몸이 좀 냉한 사람은 여름철에 활동적이거든요. 그러니까 가 인간의 기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內經“을 한 번 볼까요?

黃帝가 말씀하신다. “천지의 기가 활동하지 않는 시기가 있을 것인가?” 岐伯이 대답하기를, “만약 있다고 하오면, 만물은 발생을 정지하고 化育도 하지 않는 天池가 정지된 때일 것이옵니다” 黃帝가 말씀하신다. “천지가 정지한다면 만물의 발생, 화육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가?” 岐伯이 말씀드린다. “우주의 음양의 기가 서로 출입하지 않게 되면 창조주의 기능이 소멸되어 天氣地氣昇降이 없어져 天氣地氣에 있어서 서로 교류하는 일 없이 독립되옵니다. 곧, 음양의 가 서로 출입하지 않게 되오면, 만물은 일생을 통한 를 되풀이할 수는 없사옵니다. 天氣地氣昇降이 없어지면, 만물은 春夏秋冬의 1년을 통한 을 행할 수도 없는 것이 옵니다” (內經
五運六氣編
六微旨大論)

이 위에 있고 가 아래에 있는 는 불길한 죠. 왜냐하면 대로 움직여 버리고 대로 움직여 버리니까 가 소멸되어서 서로 교류하는 일이 없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 즉 태어나서 자라고 장성하게 되고 늙고 죽는 것을 되풀이할 수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결국은 우리가 왜 죽게 됩니까? 간단하게 대답해 보세요. 태어났으니까 죽는 것 아닙니까! 석가모니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고행을 하고 명상을 하다가 깨닫고 나서 첫 번째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 이것이 하므로 저것이 하고, 저것이 하므로 이것이 한다.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하고 저것이 멸하므로 이것이 멸하는구나’ 생이 있음에 사가 있다고 했거든요. 그럼 결국 생은 왜 있습니까? 사가 있기 때문에 생이 있는 거예요. 자! 생사문제가 나왔는데 결국은 이러한 음양이니 뭐니 하는 분류는 10으로나 100으로나 1,000으로나 10,000으로나 분류해도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融通無碍하게 분류를 하라고 “內經
五運行大論“에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이 방안에 물이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처치를 하겠는가? 꼭 土克水의 원칙에 의해서 흙을 뿌리는 것이 아니고 드라이로 말려버리는 火克水의 방법도 있고, 바람으로 하겠다는 木克水의 방법도 있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요. 그러니까 五行의 이치는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이치가 있는 것이 아니냐 하고 岐伯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요. 岐伯이 먼저 五運六氣의 법칙을 얘기하면서도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훨씬 많은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에게 처음에 陰陽五行을 가르쳐주는 것은 어린아이 달래기 위한 사탕에 불과한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 사탕을 먹고 들어오면 그 다음에는 휘황찬란한 꽃밭이 있는데 이때부터는 여러분들의 직관이 작용을 해야 하는 거지요.

五運六氣의 음양은 정상적인 나 규칙으로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取象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有無, 貴賤, 上下, 海中金, 沙中金, 路傍土, 壁上土 등 이 모두가 비교를 가지고 정하는 겁니다. 비교를 하려면 중심이 있어야 되는 것이죠.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늘은 이고 땅은 이다’라고 하지 않고 ‘하늘은 이고 땅은 이다’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틀림없이 ‘어?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며 반문을 하겠지요. 어떤 기운, 어떤 관점에서 그렇게 이야기 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손톱을 보고 이다 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건 말도 안됩니다. 비교기준이 있어야지요. 손톱을 에 비교한다면 陽的이 되지만 온도상으로 피부와 비교하면 손톱이 陰的이 되는 겁니다.

제가 포항에 있을 때 손톱이 오이씨처럼 나오다가 마는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는데, 만약 여러분들이 한의원을 개업하고 있는데 이런 환자가 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치료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배울 때 손톱은 어디에 속한다고 배웠습니까? 중에서 에 속한다고 배웠지요. 그러면 족궐음간경을 놓으면 좋겠네요. 아무튼 이것이 옳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손톱을 五運六氣上 어디에 두면 괜찮을까요? 陽明燥金에 들 수도 있겠지요. 제가 지금 陽明燥金에 분류시켰다고 해서 이것을 100%신봉하시면 절대 안됩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이제까지 足厥陰肝經만 생각하셨으니까 이제부터는 陽明燥金도 생각을 해보라는 뜻에서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집이 한 채 있다고 합시다. 철근으로 기둥을 세우고 시멘트를 바르고 안에는 도배를 깨끗이 해 놓았습니다. 또 창문을 열어 놓으면 통풍이 되는데 난방장치와 온방장치까지 두루 설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철근은 陽明燥金에 해당될 테고 시멘트는 太陰濕, 난방장치는 少陰君火, 냉방장치는 太陽寒水, 또 밖에서 시원한 바람이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니까 厥陰風, 따뜻한 햇빛은 少陽相火,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 바람이 심하게 부니까 골재인 철근이 약해서 집이 흔들거린다고 하면 陽明燥金인 철근을 보충시켜 줄 수도 있지만 거꾸로 厥陰風해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無有定法佛法이라’정한 법이 없는 것이 깨달은 사람의 법입니다. 제가 佛法이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다른 종교를 가지신 불들은 아무래도 지겨울테니까 ‘無有定法正法이다’라고 기억해 두세요.

黃帝의 질문 중에 “이라고 하는 것 즉 비교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이라고 하는, 즉 비교라고 하는 것은 와 같은 것이 결국 비교된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이 이야기 되어질 때 과 상대되고 그 무엇이 이야기 되어진 것입니다. 가 불이라 할 때 하나는 陽化, 다른 하나는 陰火가 되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다섯 가지로 분류 비교한 것이 十干인 것입니다. 같은 少陰君火일지라도 하나는 陰火가 되고 다른 하나는 陽化가 되는데 왜 이렇게 나뉘어 지겠습니까? 그것은 주어진 어떤 환경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오늘 사랑하는 애인을 만났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나는 기분이 좋아서 애인의 손도 잡아주고 싶고 키스도 하고 싶고 그렇습니다. 애인 역시 마음 들떠 있는 것 같고 아주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러면 만나서 둘이 아주 기분이 좋은데 만약, 애인이 집에서 나올 때 아빠에게 심한 꾸중을 들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남자 만나고 다니느냐”, “다시 또 만나는 것을 알면 대학교 학비도 대주지 않는다”하고 옆에서 엄마, 오빠까지 한마디씩 거들다 보니까 애인의 기분이 몹시 상해서 나온 거지요. 그러면 나의 마음이 그렇다 하더라도 애인의 기분이 몹시 나빠있는데 내 뜻대로 할 수가 있나요? 그게 잘 안되지요. 또 물질적인 상황에서 예를 보면 겨울철에 피는 모닥불과 여름철에 피는 모닥불이 똑 같이 타오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有無, 貴賤, 上下, 貧富, 緩急, 大小, 生死 등은 어떤 차원의 기준에서 비교한 것에 불과한 겁니다. 그러니까 깨어있는 옛 사람들의 말장난이죠. 그러니까 제 이야기의 결론은 쉽게 이야기해서 그 말장난에 속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비교 없는 마음으로 중심만 잡고 있으면 속지 않게 되지요. 이런 관점에서 경전을 본다면 “아하! 黃帝는 이런 눈으로 陰陽을 이야기 했군 五運六氣海中金, 沙中金의 의미는 이런 것이었군”하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먼저 이론을 외우기보다는 이러한 이해의 차원을 포착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관점이 생기게 되면, 얼마든지 수많은 陰陽論을 쓸 수가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여러분들의 天干地支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림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남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天干地支를 인체에 비유를 합니다.

天干地支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제가 을 사람의 머리라고 이야기를 많이 해 왔는데 그렇다면 머리의 운동에 따라 대비를 시켜야 당연한 것이겠지요. 뒤에 있는 그림은 를 평면적으로 이야기한 것인데 내용적이 아닌 계절적으로 배당을 해 놓은 것입니다. 은 오른쪽 눈, 은 왼쪽 눈에 해당하는데 丙丁인 입은 左右가 없지요. 그러면 입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먹는 일, 둘째는 말하는 일이죠. 그래서 일단 은 주로 언어를 주관하고 은 주로 먹는 것을 주관한다고 해두었습니다. 음식이라고 할 때 이 되고 이 되겠지요. 왜냐하면 은 마시는 것, 즉 부드러운 것을 먹는 것이고, 은 딱딱 한 것을 먹는 것이거든요. 이것이 음식이란 말의 정확한 해석입니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는 색을 보면서 질을 보게 되는데 왼쪽 눈은 대체적으로 이라든가 색을 보게 되고 오른쪽 눈은 이라든가 光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제가 말씀 드린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들으면 웃으실지 모르지만 사실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 하는 일이 서로 다릅니다. 실제 브라만교의 요가에서는 이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코도 마찬가지예요. 왼쪽 코는 을 주관하고 오른쪽 코는 를 주관하게 됩니다. 왼쪽은 향을 주관해서 냄새가 좋으면 왼쪽 코가 예민하게 벌렁벌렁하는 것이고 오른쪽 코가 발달된 사람은 주로 기분 나쁜 냄새를 빨리 판단하게 됩니다. 이것은 최근에 실제적으로 증명이 되었는데 그 증거로는 左腦右腦의 기능이 다르다고 하지 않습니까? 일본 사람들은 계산능력이나 수학능력 같은 것은 좋은데 창조적인 능력이나 종교적인 능력이 없다고 하지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창조적인 두뇌 위주로 많이 발달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민한 민족이라고 하지요. 이 左腦右腦가 공히 발달해야 잘 할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가 하면 의사입니다. 이것은 현재 컴퓨터 상으로도 나온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은 우측에 있는 콧구멍, 은 왼쪽에 있는 콧구멍이 됩니다.

는 제가 따로 이야기 할 것이고 壬癸는 귀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소리를 들을 때에 무엇과 무엇이 있습니까? 고저, 장단이 있고 리듬이 있지요. 그러니까 음과 율이 있는데 왼쪽 귀는 소리를 듣는다면 오른쪽 귀는 박자를 듣게 됩니다. 어린 아기들이 엄마의 젖을 먹을 때 제일 가까이 듣는 것이 엄마의 심장소리라고 합니다. 쿵쿵쿵하는 소리가 가장 기본적인 리듬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요즘 유행하는 빠른 탬포의 음악, 아프리카 원시인들이 두드리는 북소리 같은 것을 들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지요?

유치원 꼬마 아이들을 모아 놓고 외국곡을 틀어주면 신나게 춤을 추는데 갑자기 한국전통의 음악인 아리랑 같은 음악을 틀어주면 금방 춤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자체의 리듬이 있지요. 우리나라는 문화가 상당히 오래 되어서 넉적지근하게 교활하고 세련된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초적인 리듬은 아프리카 토인들이 가지고 있는 원시적인 리듬에 가깝다고 합니다. 아기들이 모체 내에서 듣는 음이 엄마의 心音인데 -태내에서는 얼마나 크게 들리겠습니까? 평소의 엄마 마음이 평정되어 있을 때에는 쿵쿵쿵하다가 불안정한 상태가 되면 쿵쾅쿵쾅 요란스럽게 되겠지요. 가만히 보면 모든 북소리는 심장음과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호흡은 1분에 1②!16번 정도가 정상인데 우리 민족은 호흡의 민족이고 아프리카 같은 곳은 심장의 민족입니다. 그러나 서양은 두뇌의 리듬만을 생각하지요.

여러분! 이 소리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TV를 틀어 놓고 소리를 안 나오게 해보세요. 얼마나 우습습니까? 그러니까 이 리듬이라고 하는 것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고 또 인간들은 이 소리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거든요. 이제 가 남아 있는데, 는 나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이고 는 너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앞의 그림을 보시면 전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쉬워 질 텐데 대체적으로 나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음식을 좋아하고 향을 좋아하고 형상이나 색깔 있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도 리듬 위주 보다는 고저위주를 좋아합니다.

그러면 이 가 전부 무엇으로 총괄되느냐? 하나는 나 위주로 생각하는 것, 다른 하나는 너 위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 위주로 생각하는 것은 이면서 氣穴論에서는 에 해당하고, 너 위주로 생각하는 것은 이면서 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풍 같은 경우에 뚱뚱한 사람은 대체적으로 어느 쪽으로 중풍이 오겠습니까? 뚱뚱한 사람이 중풍이 온다고 하는 것은 오른쪽 해서 오는 것이거든요. 또 여자들은 대체적으로 陰的인데 어느 쪽으로 중풍이 오면 불길하겠습니까? 여자들은 선천적으로 무엇이 허합니까? 하거든요. 여자들은 본래 하고 한데 본래 한 쪽으로 중풍이 왔으니까 한 쪽이 또 늘어져 버린 겁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陰陽氣血論에 근거하여 나온 말들인데 사실은 꼭 그렇지도 않더군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냥 로만 들어두시기 바랍니다. “우리 엄마는 오른쪽으로 중풍이 왔는데 잘 낫던데요” 이러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설이 있다는 이야기 정도로 들어두시면 됩니다.

자! 그러면 몸통에 관하여 한 번 볼까요?(앞의 그림을 참조하세요.) 少陰으로 足少陰腎, 手少陰心이 되고, 卯酉陽明으로 手陽明大腸, 足陽明胃가 되지요. 太陰이며, 手太陰肺, 足太陰脾… 이런 식으로 있는데 이 도표를 자세히 보면 상하의 관점에서 가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辰戌丑未命理學에서 우리와 같이 六氣的인 방법으로 보지 않고 五行的 방법으로 보아서 라고 합니다 마는 手太陰의 자리에 足太陰脾가 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실제로 ‘의학입문’에 보면 앞의 도표처럼 되어 있거든요. 일단 내용상으로 도표처럼 배속을 시켜 드렸습니다. 그럼 에 해당하는 足少陰腎를 한번 볼까요? 地雷復卦라고 하는데 앞에서는 우리가 六氣五運이 혼합된 火水未濟卦足少陰腎經의 성격을 관찰했지만 이제 여기서는 계절적인 관점, 소위 春夏秋冬의 관점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一陽이 하나, 두개, 세개가 되는 地雷復, 地澤臨, 地天泰卦는 여러분들이 周易책을 찾아서 연구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차례로 12를 조사하고 나면 벌써 24는 공부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이거든요. 이 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잘 모르고 저도 잘 모르는 것이지만 走馬看山격으로 대충 卦象이라도 한번 짚어보고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위에 그려진 12地支에 해당하는 卦象이 진짜 卦象입니다. 그러니까 足少陰腎에 해당하는 卦象을 그려보라고 하면 一陽이 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앞에서는 六氣적인 관찰을 한 것인데 이는 방향적인 관찰일 뿐 입니다. 이 정도로 五運六氣에 대한 개괄적인 얘기를 끝내고 좀더 세부적인 사항을 다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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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운 육기 7

7.

이 단락에서는 첫째, 禪問答의 등장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고 둘째, 唯心的인 관찰에 의한 기존 음양관의 혼란유발이 또한 특징입니다. 이 五運六氣를 그 동안에도 자꾸 조금씩 나열해 드렸던 이유는 전체성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시겠지만 …을 天干이라고 하고 …를 지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런 말을 써 놓았는지 알 수가 없고 무슨 뜻인지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地支를 보면 동물에 대한 取象이므로 이해할 수가 있지요. 天干五行×2, 地支六經×2로서 五行六經이 둘로 나뉘어진 상황임을 알 수가 있는데 그러면 왜 五行이면 다섯 가지만으로 분류를 하고 六經은 여섯 가지로 나누지 않고 둘로 나누는 상황이 필요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五行에도 서로 상대적인 陰陽이 있기 때문에 六經과 마찬가지로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같은 少陰이라 하더라도 陽少陰, 陰少陰이 있고, 인 봄()이라 하더라도 陽春이 있고 陰春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성을 보더라도 여성적인 여성이 있고 남성적인 여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것을 나누고자 하면 한이 없어요. 편의상 이렇게 둘로 나누어 놓은 거지요.

우리 인간을 볼 때 최초에 남자와 여자가 분리되고, 남자와 여자가 분리된 것에서 다시 남성 같은 여성, 여성 같은 남성으로 분류하고 이것을 여성 같은 남성 중에 더 여성 같은 성격… 이런 식으로 분류해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인 곱하기 나누기를 한 十干十二支는 64에서 水火旣濟, 火水未濟, 重天乾, 重地坤卦를 뺀 60괘가 서로 맞물고 돌아가는 겁니다.

중에도 路傍土가 있고 壁上土가 있지요. 길거리에 있는 흙과 벽에 붙어 있는 흙이죠. 또 이라 하더라도 平地木山中木, 甲子乙丑
海中金…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주 보는 데만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복합적인 상황에 대한 예만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 이 五運六氣 각론은 너무 어려워서 확대해석이 어렵습니다. ‘甲子乙丑
海中金‘이런 말이 나오는데 저는 갑자을축 해중금에서 꽉 막혀버리면 그 다음으로 진척을 안 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연구를 하다가 시간도 없고 놀기에도 바빠서 공부를 못했습니다. 같은 이지만 옛사람들은 陰金이 있다고 본 것이지요. 그러면 海中金 즉 바닷 속에 있는 과 모래 속에 있는 沙中金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옛날 선승들은 수수께끼를 좋아했습니다. 저는 여학생들이 오면 꼭 물어 보는 것이 있는데, 여학생들만 한 번 대답을 해 보세요. “무우말랭이에 꼭 들어가는 것이 뭐겠습니까?” 公案法에서는 다른 생각으로 머리를 돌리지 않는 것을 칭찬합니다. 무우말랭이에 꼭 들어가는 것은 무우거든요. 그런데 학생들은 이것을 꼬집어 내지 못하고 고춧가루, 참기름, 설탕, 미원 등… 복잡하게 대답을 하거든요. 계속 ‘틀렸다, 틀렸다’라는 것을 되풀이 해 듣다 보면 그제야 무우 라는 대답이 나오는 거예요. 공안에 접근하는 길은 단순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눈이 바로 공안에 근접해 있는 거지요. 十牛圖(십우를 나타낸 그림. 선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표시함 것임. 십우란 자기의 본심을 찾아 진리를 깨닫는 순서. 인간의 본심을 소에 비유하여 소를 찾고 얻는 순서와 이미 얻은 뒤에 주의 할 점을 10가지로 설명함)중의

하나를 보면…

返本還原

본래 청정하여 한 티끌도 받지 않는다.

有相의 영고성쇠를 보고 無爲凝寂에 이르니

幻化와 같지 않으므로 어찌 修治할 것인가.

수록 산청으로 앉아서 성패를 본다.

本來淸淨하여 不受一塵이로되

觀有相之
榮枯하고 處無一爲之凝寂하니

不同幻化豈假修治리요

水錄山靑하니 坐觀成敗로다

五運六氣는 이 정도로 천진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겁니다. 교활하게 잘 돌아가는 머리가 아니라 천진한 눈, 순수한 머리만이 이것을 이해 할 수 있는 겁니다. 저희 한의원에 외국인 교수 하나가 “周易“을 배우러 가끔 오는데 “周易” 64는 저도 잘 모르니까 주로 唯心的인 것을 이야기 해 주고 있죠. 그런데 이 친구가 저에게 하도 공안 문제를 가지고 당하다 보니까 어느 날은 자기가 공안 문제를 하나 내겠다고 하더라구요. 사실 그 친구의 ‘American chicken’ 공안은 조금 저 차원 공안이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제가 여러분들에게 공안법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통밥”을 굴리는 공부만을 해 왔으니까 여기서는 “통밥”을 쉬는 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치킨공안(?)이라 하는 것은 미국에서 어린이들이 많이 하고 있는 것인데, “병아리가 횡단 보도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왜 건너 갈까요?” 길이기 때문에…?, 집이 그쪽이기 때문에…?, 건널목이기 때문에…?, 가고 싶어서…?, 자기도 모르게…?, 다 틀렸습니다. 또 다른 분 대답해 보십시오. 신호등 불이 켜져서…지금 가장 통밥을 잘 굴리는 사람의 가장 유치한 통밥이 하나 나왔습니다. 벌써 파란 신호등까지 생각을 한 겁니다. 지금 신호등 불이 켜져서 라고 대답하신 분 성이 무엇입니까? 허 씨요? 예! 앞으로 학생의 이름은 ‘허 유통’이라고 하십시오. 유치한 통밥의 대가, 허 유통 씨, 머리 좋은 사람들은 파란 신호등이 있으니까, 엄마 보고 싶어서, 엄마 따라서, 켄터키 치킨 집이 있어서 등등… 온갖 대답들이 다 나오는데 이것은 지식입니다. 이 답은 간단합니다.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지요. 가만히 생각을 해 보세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五運六氣에서 甲子乙丑
海中金, 沙中金路傍土, 壁上土, 平地木 등 이런 말들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五行을 가지고 곱하기 나누기 하시면 안 풀어지는 겁니다. 제가 이것을 강의 듣다가 강사분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질문을 그만 두었었는데 어떤 周易學者가 시원하게 풀어주더군요. 그 분은 완전히 직관에 의해서 설명을 해 주셨는데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五行의 이론에 의해서 海中金, 沙中金이 아니고 海中金이라고 하면 바다 속에 금이 있는 그 상황, 沙中金은 모래 속에 이 있는 그 상황을 보고 그 차이점을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五行的으로 가 부딪치는 상황을 생각하지 말고 어떤 비교기준에 의해서 이 말을 써 놓은 것이므로 그 비교기준이 어디에 있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라는 이야기입니다.

壁上土, 벽에 바른 흙과 路傍土, 길가에 버려진 흙이라고 했을 때 그 기준을 어디에 두었을까요? 모든 것은 기준이 있을 때 陰陽이 정해지는 것이지, 기준이 없으면 陰陽도 정해 질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사주볼 때 소위 命理學(하늘에서 주어진 명과 자연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에서 주로 쓰는데 인간사에 이용할 때는 “당신은 꼭 路傍土와 같습니다. 길거리에 있는 흙과 같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확대해석을 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지하게 어렵지요. 여기서는 직관이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足厥陰肝經은 피리요, 어쩌구 하면서 取象을 하였는데 어느 정도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깊이 생각해 보시고 명상 재료로 삼으세요. 이것을 해석을 잘 하면 五運六氣
命理學이 끝나는 것이라고 하던데 어떤 선생님은 처음에 五行的으로 공부를 하다가 周易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그제서야 인간사에 비유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더군요.

아까 어떤 여학생이 海中金沙中金有用無用, 不用의 차원이 아니겠느냐고 이야기 했는데 이 지구상에는 모든 것 상대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有無, 貴賤, 强弱, 上下, 貧富, 緩急, 大小, 生死…이런 것을 30가지로 분류한 것에 불과한 거지요. 그러니까 이러한 가 나오면 海中金沙中金의 차이점을 보아야지 어느 한쪽만을 공부한다고 하면 100년을 공부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듯이 “內經五運六氣編에 보면 陰陽은 5로도 10으로도 …으로도 나눌 수 있다고 했거든요. 제가 “內經“에 있는 근거를 대드리면 여러분들은 아하! 이런 것을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로구나 하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內經五運六氣編
五運行大論에 보면

가 알기에는 十干五行的 관계나 十二支方位的 관계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상의 陰陽이나 五行의 분류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대체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岐伯이 대답하여 말씀드린다. “그것은 분명한 도리가 아니겠사옵니까? 鬼臾區가 아뢰온 것은 天池를 운영하는 五運六氣상의 陰陽이나 五行이옵고, 폐하께서 말씀하신 것은 단지 인간들에게 관계가 있는 일반적인 陰陽으로 이것 또한 五行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다른 2개의 법칙을 합하여 생각해 보아도 거기에서 일정한 규칙을 발견할 수 있는데 대체로 陰陽 등 2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활용하여 십으로 분류하거나 백으로 분류하거나, 혹은 또 천으로도 만으로도 분류할 수는 있는 것이므로 형편에 좋도록 適宜融通無碍하게 분리하면 좋을 것이옵니다. 이러한 이유로 五運六氣陰陽五行의 이치가 상식적인 陰陽五行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이것은 이것대로 좋은 것이옵니다” (五運行大論)

그러니까 五運이라고 하는 것은 사계절의 변화, 즉 이고, 六氣라고 하는 것은 인데 봄이라고 하여 바람만 있습니까? 태양이 비치고 추운 날도 있고 가 다 있지요. 그러므로 지지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天氣, 즉 氣運에 해당하는 것이고 天干이라고 하는 것은 의 변화를 말하는 겁니다. 대다수의 많은 학생들이 五運六氣라고 하면 굉장히 어렵게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기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니까 어떤 교수들은 “그 사람은 오운육기파야 오운육기파…” 그렇게 이야기들을 한다고 하던데 아니! 세상에 오운육기파가 어디에 있습니까? 오운육기라고 하는 것은 우주의 실상을 종합해서 이야기 하려는 노력인데 우주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에 파가 어디에 존재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선입관을 가지지 마세요.

제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오운육기는 甲子乙丑…에 대한 해석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앞에서 공부한 六氣的, 차원인 少陰, 厥陰, 太陰, 少陽, 陽明, 太陽과 여러분이 알고 있는 , , , , 를 혼합하여 얼마나 확대해석을 잘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확대 해석을 잘해야 命理學의 대가가 되고 또 한방으로 들어오면 기후라든가 사람의 病變을 보는 대가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海中金에 대해서 한 번 해석해봐라” 이런 것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금에 대비된 海中金이냐 하는 기준이 있어야지요.

黃帝岐伯에게 “짐이 듣기에는 十干五行的 관계나 十二支方位的 관계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상식적인 陰陽이나 五行의 분류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본인도 이 점에 동의합니다. 예를 들어 少陰君火方位上으로 어디에 속해야 할까요? 일반적인 五行上으로 보면 南方에 속해야 합니다. 手少陰南方에 속한 것이 사실인데 足少陰은 제일 北方에 속해 있거든요. 또 陽明燥金만 하더라도 西方에 속해야 하는데 手陽明東方에 속해 있거든요. 더구나 手陽明같은 경우는 五運六氣가 모두 인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참 이상하지요. 제가 앞에서 조금 이야기하다가 그만두었는데 겨울철에 우물물이 따뜻해지는 것과 여름철에 우물물이 차가와지는 것이 단순히 감각적인 차원이겠습니까? 아니면 실제로도 온도가 변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감각적이라는 쪽이 절대적으로 우세할 겁니다. 그렇지만 몇몇 분은 실제로 온도의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여러분들이 온도계를 가지고 실험해 보세요. 단순히 감각 차이라고 중고등학교 때 배웠다 하더라도 그것이 틀릴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여름철에 떠온 샘물을 더울 때 먹으니까 시원함을 느낀다고 했는데 냉방이 잘 된 방에서 그 샘물을 마신다고 하면 다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까요? 또 겨울철에 먹는 샘물이 춥기 때문에 따뜻함을 느낀다면 히타 장치가 잘된 방에서 그 샘물을 먹는다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것을 실제로 실험해 보세요. 제가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기존의 사고방식에 많은 혼란을 드렸는데 그 이유는 제가 五運六氣를 설명하면서 말씀드린 겁니다.

黃帝十干十二支에서 혼란을 느껴 “어째서 少陰이 북방으로 가고 상식상의 陰陽이나 五行의 분류와 다른 것이 어떤 연유인가”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岐伯은 “그것은 바로 당신이 알고 있는 인간사에서만의 이야기이고 천체 우주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겨울이면 무조건 추운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죠.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에서 이것을 평면적으로 본다면 壬癸北方水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보면 甲己
合土가 되거든요. 솔직히 내용상의 문제는 저도 어려워서 모르겠고 이걸 설명할 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壬癸北方水로 이것이 와 서로 어울려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겨울철에 바람이 많다고 하면 厥陰風이니까 壬巳가 되고, 겨울철에 유별나게 춥다고 하면 太陽寒水에 해당하는 이 더해지게 되면 壬戌이 되겠지요. 하지만 五運六氣를 해석하는 일은 신중해야 합니다. 위에서 말한 예는 여러분들을 평면적으로 이해가 쉽도록 하기 위해서 드리는 말씀이니까 이것을 외우시면 절대로 안됩니다.

옛날에 제가 五運六氣를 배울 때에는 五運六氣를 이해하려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번 관찰해 보고 낮의 모닥불과 밤의 모닥불을 관찰해 보라고 했거든요. 똑같은 少陰君火라고 하더라도 春夏秋冬에 작용하는 것이 각각 다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상상력과 추리력을 많이 키워야만 합니다. 특히 지금 말씀 드리는 부분은 더욱 그러하지요. 제가 여러분에게 六十甲子를 써오라고 했는데 이것은 꼭 쓰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저는 그것을 외우라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것은 한 번 씀으로 해서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무조건 외우지 마시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甲子年이라고 하면 그 甲子年의 의미를 터득한 사람만이 五運六氣에 접근한 사람이죠. ‘天火同人‘의 가 있다고 할 때 1는 어떻고 2는 어떻고를 외우는 것보다 天火同人天卦火卦를 확실히 고민하여 보고 자기 나름대로 연구하여 생각해 본 사람이 진리에 가깝게 접근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六十甲子를 써 보면서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가 무슨 입니까? 足少陰腎에 해당하는 地雷復卦죠. 위에 있는 는 무슨 입니까? 八坤地卦에 해당합니다. 여러분들 지금 八卦를 모르시는 분이 있으면 절대 안됩니다. 八坤地卦任脈에 해당하고 아래에 있는 四震雷에 해당하는 소양경입니다. 그러면 少陽經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인 배경은 쌀쌀맞고 남에게 모욕을 받았을 때의 느낌이겠죠. 그러니까 相火만 하더라도 ‘寅申相火의 해에는 장군이 태어난다. 난리가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더위가 밀어닥칠 수도 있다. 가뭄이 온다’등의 여러 가지의 해석이 등장하게 되죠. 또 寅申相火가 들어간 사람은 ‘장군감 아니면 깡패다’라고도 하는데 하나는 좋게 작용한 것이고, 하나는 나쁘게 작용한 겁니다.

우리가 先天後天의 이야기를 참 많이 하고 있는데 이 선천과 후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에 麥門冬씨가 있다고 합시다. 본래 麥門冬種子는 좋은데 바람에 날려서 건조한 땅에 떨어졌다고 하면 이건 先天(麥門冬種子)은 좋은데 後天(건조한 땅)이 나쁜 경우죠. 그런데 이 맥문동 종자가 습한 땅을 만났다고 하면 선천도 좋고 후천도 좋은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아주 지혜도 좋고 공부도 잘 할 수 있는 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태어난 곳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게 되어 공부를 하려고 하면 엄마가 나가서 돈 벌어야 하니까 동생 보라고 하고, 또 나가서 돈 벌어오라고 하면 사람이 쪼그라 붙어서 말년까지 가난한 신세 못 면하게 되고 그저 죽을 때까지 자신의 환경 탓 만을 하다가 죽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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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운 육기 6

6.

山査는 산에서 나는 사과로 고기 먹고 체한 데 좋다고(채소 먹고 체한 데는 草果) 합니다. 山査肉質이 많으므로 통풍이 잘 되는 산 중턱이나 벌판에서 잘 자라고, 고원지대나 척박한 땅에서는 잘 자라지 않습니다. 또 계피나무는 너무 축축한 땅에서는 잘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식물에 따라 각기 자생지역이 다르고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陽明燥氣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식물 열매의 맛을 보거나 잎 등을 보고 자생지역 등을 잘 판별할 수 있도록 관찰력을 기르십시오.

이번에는 향기입니다. 허준선생이 사향 대신 오래된 절간의 똥으로 병을 치료했다는 이야기를 해 드렸듯이 냄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냄새에는 가 있습니다. 은 냄새가 좋은 것이고, 는 악취지요. 우리가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그 냄새를 좋다고 합니까? 숨이 콱 막히지요. 이렇게 은 통하게 하고 는 막히게 합니다. 또 , 하게 하지요. (厥陰, 少陰, 太陰)에 속하는 신맛이나 단맛은 삼키고 싶지요. 할 때 나는 냄새를 보더라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커피나 콩을 볶을 때의 구수한 냄새와 으로 아주 새까맣게 태울 때의 악취가 있지요. 前者少陰, 後者少陽에 해당합니다. 발효시키는 냄새나 술 익는 냄새 그리고 메주 띄우는 냄새 같은 것은 少陰君火에 해당하지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몇 가지 비린내, 지린내… 등은 太陽에 속합니다. 비린내도 맡기 좋은 것은 太陰(향긋한 바다 냄새 같은 것)에 속하고, 맡기가 거북한 것은 太陽에 속합니다. 그리고 이 속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일 때는, 太陰에 해당한다고 봐야 됩니다. 厥陰에 관계되는 은 시큼하면서도 아주 산뜻한 것입니다. 산에 가서 바람을 쐬는데 상큼함이 표현할 수 없도록 좋은 때가 있지요. 이렇게 시원하고 상쾌한 냄새 같은 것도 厥陰에 해당합니다. 수목을 통해서 나오는 바람 냄새 같은 것이 기분 좋은 厥陰風의 냄새입니다. 목욕 중에서도 風浴에 해당되지요. 수목과 교접을 하면서 땀이 촉촉하게 나도록 뛰는 것이 풍욕입니다. 옛날에 봄바람이 불 적에 신선들은 머리를 탁 풀어 뜨리고 바람이 부는 동쪽을 향해서 바람을 쐬었다고 하는 말이 있지요. 이것이 풍욕입니다. 그래서 厥陰은 익을 때 시큼하게 나는 아주 상쾌한 냄새이고, 少陰은 볶을 때의 구수하게 익는 냄새입니다. 향긋한 비린내나 달콤한 냄새는 太陰이지요.

또 향기가 사람의 어떤 감정을 자극시킨다면 어떤 독특한 향이 나올 것 같군요. 예를 들면, 肝硬化症 환자의 입에서는 간경화증 환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냄새가 납니다. 위암 환자에겐 위암 환자가 갖는 독특한 냄새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훌륭한 의학도가 되려면 코도 발달되어야 합니다. 구취에도 속에서 무언가 타는 듯한 냄새의 구취가 있고, 비린 구취가 있고, 냄새 맡기 역겨운 것도 있는가 하면 어떤 구취는 산뜻함이 향기롭기까지 한 좋은 구취가 있습니다. 이런 예를 통해서 보아도 사람에겐 그 사람 특유의 냄새가 있다고 봅니다. 동물에게도 독특한 냄새가 있듯이 사람도 각기 독특한 체취가 있습니다. 인간의 향기가 동물의 그것과 다른 점은 좋은 냄새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도를 닦아 어느 경지에 오르면 향기가 난다는데 이것이 진짜 향기인 것입니다.

어떤 병에 걸리면 어떤 내음이 나는 것으로 미루어봐서도 알 수가 있겠지요. 따라서 식물도 어떤 내음이 나는 것이라면 그에 부합되는 성격을 지녔음을 알 수가 있는 겁니다. 환자에게서 어떤 구취가 난다고 하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위장이 나쁠 때, 비장이 나쁠 때, 간장이 나쁠 때, 심장이 나쁠 때 냄새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 입에서 탄내가 자꾸 난다면 그 사람은 초조하다고 볼 수 있지요. ‘아유-전 자꾸 요새 입안에 단내가 나요’이것은 脾臟에 열이 있는 징조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입이 써요’이것은 傷寒病에서 少陽病의 증상입니다. 口苦, 咽乾, 目眩(목구멍이 마르고 눈이 어질어질한 것)은 少陽病에 해당하는 겁니다. 입안이 단 것은 太陰으로 足太陰脾經에 열이 생겼을 때와 脾臟濕熱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지요. ‘에이, 더러운 세상, 콱 죽어버리고 싶어!’라고 했더니 입이 막 짭니다. 이 경우는 죽어버리고 싶다 하는 어떤 공포라든가 긴장감, 슬픔 때문에 입이 짠 것이지요. 또 입이 매운 것을 느끼는 분도 있어요. 매워도 무엇인가 매운 향기이면서도 냄새가 좋은 향기 같은 것은 들어 마시게 되는 것이지요. 少陰이나 厥陰이나 太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더라도 매우면서도 향기라고 볼 수 없는 톡 쏘는 냄새, 그러니까 辛香이 아니고 辛臭인 고춧가루 냄새를 갑자기 맡으면 하게 됩니까? 후~후 하고 내뿜지요. 톡 쏘는 매운 냄새, 아주 자극적인 냄새는 陽明에 속합니다. 기분 나쁜 노린내나 털이 타는 냄새는 대체적으로 太陽에 속합니다.

이렇게 공부를 하고 나도 식물관찰을 가보면 꽉 막혀버리지요. 무슨 기운을 어떻게 관찰합니까? 부분부분이 다르지요. 뿌리는 少陰인데 지상으로 올라온 부분은 太陰濕이 되고 열매는 厥陰風이 될 수 있습니다. 가시가 있다면 陽明도 있는 것이고, 잎이 톱니바퀴처럼 생겼다면 少陽도 있는 것입니다. 식물이 꼭 한 가지 성질로만 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여러 가지를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부분을 쓰느냐에 따라서 그 약성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시가 있지만 濕地에서 자랐으니 太陰濕이겠지’하고 쓰면 안됩니다. 어느 땅에서는 고염이 되고 어느 땅에서는 감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특수하게 변하는 경우도 관찰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상황은 그때 그때의 경우에 맞게 관찰을 해야지, 외워서도 안되겠지요. ‘감이군! 이것은 앞으로 어느 정도 크고 그 모양이 어떻게 되겠군!’ 이렇게 예언을 할 것이 아니라 그 땅이라든가 환경 등을 충분히 살펴서 變種이 되는 경우까지도 읽어내야 합니다. 첫째는 부분 부분의 다른 점을 참조하고, 둘째는 부분의 이질요소를 참조하고, 셋째는 開花되는 시기를 참조하세요. 어느 철에 번성하느냐에 따라 성질상 큰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예로 쌀과 보리 중 어떤 것이 더 차겠습니까? 보리가 더 찹니다. 五運六氣를 공부한 사람이면 자연관찰을 자꾸 해야 됩니다. 여름을 지나는 쌀이 보리보다는 덥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같은 술이라도 보리술이 더 차죠. 여름에 피는 꽃 나무와 겨울에 피는 동백꽃과는 차이점이 많지요. 동백꽃 씨는 기름이 많아요. 그런데 여름 꽃의 씨에는 기름이 없습니다. 겨울에 피는 꽃들은 대체적으로 다 기름이 많아요. 그것은 足少陰腎經이 기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피가 手太陽小腸經에 해당한다면 기름은 足少陰腎經이 되고 인체에 비유한다면 에 해당합니다. 기름이 많다면 정력적인 사람이고, 피가 많으면 부자로 잘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차이점을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습관 때문에 인생의 진리를 곧잘 놓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이유 때문이 아니라 사소한 습관 때문이지요. 어떤 부자가 눈이 튀어나오는 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보였더니 의사는 “아무래도 위장이 잘못된 것 같으니 내시경을 한번 투사해 봅시다” 위가 잘못되었으니 잘라내는 것이 좋겠다 하여 수술을 하였지만 튀어나온 눈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다시금 흉곽내과를 갔습니다. 를 찍어보니까 아무래도 의 기관지를 수술해야 할 것 같다면서 기관지의 일부를 수술해서 제거했지요. 그러나 소용이 없었어요. 이번에는 비뇨기과를 찾아가보니 “당신은 너무 을 밝혀서 아무래도 전립선에 염증이 있는 것 같아요” 고환의 일부를 잘라야 한다고 해서 한차례 수술을 또 받았습니다.

그래도 처음의 눈알이 튀어나온 것은 조금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치과에 가봐도 별로 소용 없었으며, 안과에서 눈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이상한 안경을 맞춰줍니다. 이쯤 되고 보니 병은 고사하고 사람 꼴이 말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정신과 의사를 찾아 갔습니다. 정신과 의사 가로되 “여보시오. 여기 잘라내고 저기 잘라내고 당신은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삽니까? 이제 앞으로는 당신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여태까지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입고 싶은 것 안 입고 모은 돈 아닙니까? 그래서 눈알이 자꾸 튀어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부자는 은행에 맡겼던 돈을 몽땅 찾아가지고는 집과 승용차를 샀습니다. “다 부서진 몸으로 오래 살기 틀렸으니 쓰고나 가자!” 이젠 단벌신사도 면해보고 전에는 와이셔츠 하나로 10년을 견디었는데 한번에 10벌쯤 맞춰 입자 하고는 양복점을 찾았지요.

양복점 재단사가 기장 몇 인치 허리 몇 인치… 하다가 “목 16인치”라고 하거든요. “아니? 무슨 소리야! 내 목은 지난 50년동안 14인치인데, 난 그 이상의 치수로는 입어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선생님 목 사이즈는 16인치 입니다” “아니오. 14인치가 내 사이즈요” “진짜로 선생님은 16인치라니까요” “아! 글쎄 14인치라니까” 이러다가 싸움이 벌어질 판이 되었는데,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습니다. 14인치로 원하시니 해드리긴 합니다만 손님께서 목이 졸려서 눈이 튀어나오고 혓바닥이 빠져 나오고 눈알이 퉁퉁 붓는 병에 걸릴 확률이 많습니다” “무엇이라고? 당신이 내 병을 어찌 그리 잘 아시오?”

이사람 멀쩡한 몸 병원 다니며 다 망치고난 뒤에 우습지도 않게 깨달았지요. 이제 무슨 소용이 있어요. 와이샤쓰 2인치 차이 때문인걸 갑상선의 이상이라느니, 가슴이 어떻다느니, 신장이 어떠니 불알이 어떠니 이빨이 어떠니 했던 엉터리 같은 의사들 만나가지고 노리개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 병의 원인이 고작 와이샤쓰 2인치 차이에 있더라는 이야기지요. ‘와이샤쓰 2인치 ‘. 깨달음이란 이렇게 쉬운 겁니다. 아주 중요한 것을 여러분들의 소홀함 때문에 ‘와이샤쓰 2인치 ‘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이와 같은 것들이 여러분들의 깨달음을 방해하고 있으니까요.

方藥合編“서문을 보도록 합시다. 어떤 책이든지 읽을 때 저자의 서문이라든지 역자의 후기를 안 읽는 사람은 그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안에는 필자의 진심 토로가 몇 마디 들어있지요. “方藥合編“은 “東醫寶鑑“을 다이제스트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돌팔이들을 많이 양성시켰다는 어느 한의학자의 항변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실을 저자가 예상 못하고 책을 쓴 것은 아니지요. 책을 펴낼 적에 그러한 염려를 무척이나 했습니다. 한약인구라고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모르는 떠돌이가 3만명, 한의사가 약 4~5천명 그리고 돌팔이와 한약업사, 거기다 건재약방 사람들까지 합치면 총 한약인구가 약 10만명쯤 되는데 그 사람들 중에 “方藥合編“한 권 안 들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의 아버지들만 보아도 좀 유식하다 하면 “方藥合編“을 보고서 “얘야, 가서 十全大補湯 좀 지어 오너라” “가서 雙敗湯 좀 지어 오너라”고 합니다. 아무리 “方藥合編“이 옛 사람들의 필수 애독서라 해도 이건 안 되지요. 陰陽의 이치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렇게 濫讀하면 곤란하지요. 난 레미제라블을 읽었다. 어떻게 흘러가다가 끝 부분에서 죽었다. 또는 복수를 하고 결혼을 했다고 이야기하지요. 우리는 소설을 그렇게 읽습니다. 지금은 다이제스트 시대입니다. 이 강의도 어떤 의미로는 “東醫寶鑑“의 다이제스트입니다. 그런데 저는 다이제스트가 가지고 있는 나쁜 면보다 좋은 쪽으로 많이 생각하고 있지요. 그러나 陰陽觀도 없이 마구잡이로 무슨 병에는 무엇, 그냥 무슨 탕 무슨 탕 무슨 탕 하는 정도로 오용이 되면 “方藥合編“의 해독은 무지하게 크게 되지요.

제가 떠돌아 다니던 시절에 어느 돌팔이가 경영하는 집에 의사로 들어가고, 그 사람은 업주로서 있었는데, 글쎄 이 사람이 내가 자리만 뜨면 자꾸 진찰실로 들어 오려고 폼을 잡아요. 이 사람이 환자를 보면 병명이 한결같이 같아요. 무어라고 하냐면 무조건 “신우신장염” 눈이 아파서 오는 경우에도 그렇고 위장이 아파서 와도 신우신장염… 조그만 종이에 처방을 적는데 하나같이 五積散 하나 뿐이었어요. 무조건 이 약을 줍니다. 정말 사람 잡는 것이지요. 쇠고랑차기 딱 알맞죠. “方藥合編“중의 처방 하나로 어쩌다 환자가 나으면 그것만 외워서 쓰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 또한 엄청나게 큰 잘못입니다.

方藥合編
序文

“오호라! 선친 혜암공이 저술한 方藥의 서적이 상당히 많으나, 거기에는 모두 저자인 자기의 이름을 적어 두지 않고, 다만 施治者로 하여금 잘 치료하기에 손쉽게만 하였으니, 남에게 지식을 공개하면서 자기를 내세우지 않음이 이러하였다. 그의 저서 중에 “활투(活套)”라는 책이 하나 있는데, 글이 간명하고 내용이 풍부하며 조리가 명료하여, 누구나 한 번 보면 병증을 관찰해서 치료할 수 있었으므로, 본래 의학을 전공하지 못한 사람조차도 이 책을 갖고자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을 인쇄 발간하여 공급하지 못하고 걱정하고 있던 중에, 마침 동네 분들이 인쇄를 도모하여 본을 가지고 와서 아버님께 고하니, 아버님이 말씀하시기를 ‘책이란 물론 펴서 전하는 것이 가당하나,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달렸으니 서둘러 펼 필요는 없으며, 또 사람들이 본초를 읽지 않는데 치료법만으로서야 어찌 활투를 다 한다고 하겠는가. 이와 같은 나의 생각은, 구세코자 하는 뜻은 간절하나, 역시 증상이 비슷한 딴 병으로 알고 잘못 施治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망설이오’라고 하였다. 그래도 동네 분들의 요청이 더욱 간절하매 세상에 수응하려는 뜻을 끝내 막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께서 연로하시기 때문에 몸소 책의 초를 잡을 수가 없으므로, 이 자식에게 책을 넘겨주면서, 서례는 왕인암의 “본초비요”와 “의방집해”를 합편한 방법을 본뜨되, “손익본초”를 먼저 놓고 거기에 용약강령 및 구급과 금기 등 십여 가지를 더 보태어 “방약합편”이란 책명을 붙이라고 명하셨는데, 일이 반도 진척되지 못했을 때에 아버님이 우연히 병을 얻어 ‘내 병은 회복되지 못할 것이니, 약으로도 목숨을 연장할 수가 없다. 완전무결한 양의란 그 생사를 식별하는데 있다’고 말씀하시고 끝내 약을 복용하지 않다가, 이 해 8월 17일에 별세하셨다.

아아 슬프다! 자식으로서 선친의 세법을 계승하고 아버님의 책을 채 다 읽지도 못했는데, 하물며 아버님이 전하신 바를 감히 초잡을 엄두가 나겠는가. 그러나 동네 분들이 시작한 판각이 중단되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 장례를 치른지 두 달 만에 눈물을 닦으면서 일을 끝내어 이것을 판각에 돌렸으니, 다소 잘못된 데가 있음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책을 펴지 않았다고 한 것은, 선친의 뜻을 좇아서 의명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본서의 전말을 약술하고, 이에 관한 감회를 덧붙인다. 아아! 이 책을 보시는 분들이요, 아버님의 노파심을 상기해주소서.

고종 21(서기 1884)년 갑신 12월 상순. 혜암공의 아들 불초 黃泌秀는 피눈물을 머금고 삼가 씀.

“본초도 읽지 않고 入經(다른 말로는 귀경이라고 함. 약물의 작용이 장부경맥의 관계와 결합해서 어떤 약이 어떤 장부경맥의 병변에 대하여 일정한 치료작용을 하는 것을 말함)도 모르고 맛도 모르고 볼 줄도 모르는 자들에게 치료법만을 가르쳐 주고서 어떻게 활용을 다 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널리 펴서 세상 사람을 이롭게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증상이 비슷한 다른 병으로 잘못 알고 施治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우리 사부님과 동명인 혜암 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 첫째는 증상은 같은데 약이 다른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浮腫에는 陰虛浮腫陽虛浮腫이 있습니다. 陰虛浮腫에는 六味地黃湯牛滕, 車前子를 가미하여 처방합니다. 陽虛浮腫일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같은 부종이라 하더라도 가 부족하여 부종이 왔다면 무엇이 좋을까요? 補中益氣湯에 이뇨제를 가미하면 좋습니다. 퉁퉁한 사람들이 가 부족하여 虛性으로 오는 陽虛浮腫에는 藿香正氣散利尿之劑를 가미해도 좋습니다. 를 보충시키는 약이니까. 신장염에 무조건 이뇨제를 쓰면 부종은 다 낫습니까? 陰虛陽虛의 구별이 없으면 자칫 큰일나는 거지요.

여러분 앞에 두통환자가 찾아왔습니다. 두통에는 ‘만형자산(蔓荊子散)’이 얼른 떠오르겠지만, 무슨 두통이지요? 陽明頭痛? 太陽頭痛? 少陽頭痛? 사람은 뚱뚱해? 말랐어? 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한의사의 기본자세입니다. 여자라면 經度를 물어보아야 되고 성격, 취업, 환경, 취미 등을 수사관이 수사대상을 면밀하게 검토하듯 신중해야 합니다. 실제로 수사보다도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경솔하게 대하는 사람이 많지요. 수사관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 것처럼 우리도 유심히 보아야 되는데도 외운 것으로만 대충 넘어 가지요.

둘째는, 증상은 다른데 약이 동일한 경우입니다. 약은 똑같이 쓰는데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 별명이
四物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耳鳴症으로 온 환자에게 四物湯, 眼部充血로 온 환자에게도 四物湯, 肩臂痛으로 왔는데도 四物湯, 口渴로 왔는데도 四物湯, 원 세상에 다섯 사람이 다녀가도록 계속 사물탕만 쓰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밑에서 배우던 제자가 무조건 사물탕이면 되는 줄 알고서는 12살에 들어와서 겨우 스무살인데 바로 개업을 하고 싶어서 안달 복달을 하는 겁니다.

옛날에는 절대로 30년 제자 노릇하기 전에는 개업을 안 시켰지요. 허준선생이 개업을 한 때가 언제인지 압니까? 40대 넘어서지요. 고생을 무지하게 했지요. 유의태 선생님 집에 가서 10년을 똥빨래 해주고 그 아들에게 얼마나 멸시를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四物의 제자가 10년만에 자립해서 나가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四物이 “나가는 것은 좋은데 너 내 이름으로 개업하지 마라”고 했지만 그렇게 안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 밑에서 10년이나 있었는데 10년 동안 맨날 본 것이 사물탕인데 을 동시에 볼 줄 아는 이 있을 리 없지요.

칼날이 양쪽에 다 있는 양날 검을 禪家에서는 ‘깨달음’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도무지 陰陽觀이라곤 없는 제자 놈이 급기야
四物한약방 옆에다 元祖金四物한약방이라고 간판을 내 걸고는 사람들을 현혹시켰다고 합니다. 해장국 원조인 할머니는 그저 해장국을 맛있게 끓이는데 전념하는데 바로 옆에 ‘元祖해장국’, 또 그 옆집에 ‘진짜 원조 해장국’ 또 그 옆집에는 ‘원원원조 해장국’ 개업이야 누군들 못하겠어요? 이 없던 그 제자 놈은 6개월도 채 못되어 줄행랑을 놓았다고 합니다. 이건 실화입니다. 이렇게 陰陽觀이 투철하지 못한 사람들을 염려하여 “方藥合編“의 저자도 책을 지음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方藥合編“의 藥性歌藥物이 인삼이지요. “人蔘味甘補元氣
止渴生津調榮衛” 옛날엔 七言絶句藥性을 외웠습니다. 藥性綱領도 빠짐없이 읽어보도록 하세요. 그런데 “일이 반도 진척되지 못했을 때 오호통재라 내 병은 회복되지 못할 것이니 약으로는 목숨을 더 이상 구할 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良醫는 생사를 식별하는데 있다’며, 그래서 약도 복용치 않으시다가 8월 17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아! 슬프도다. 오호라! 이 책을 보시는 사람들이여, 아버님의 노파심을 상기하라 공의 노파심 헤아리길 간절히 바라노라… 외로운 아들 피눈물을 머금고 삼가 쓴다”고 했습니다. 참 기가 막힌 겁니다. 그리고 혜암선생의 원래의 서문은 “方藥合編
原因“바로 뒤에 있는 “醫方活套原序“입니다. 그 내용 중에 “지금의 세상 일이란 규범은 전할 수 있어도 솜씨는 전하기가 어려운데 한 때의 사견으로써 어찌 천하의 만가지 病變을 다 알게 할 수 있겠는가. 설령 그렇게 한다 해도 그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면 되풀이 설명 해야만 의술이 늘 터이니 이를 어찌 감당하겠는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보슬비가 나의 옷을 적실 때

나는 보지 않고 붓다를 본다

꽃잎이 소리 없이 떨어질 때

나는 듣지 않고 붓다의 목소리를 듣는다.

 
 

醫者들이 환자를 대할 때의 마음자세를 적절히 표현한 禪詩의 하나입니다.

하나의 졸렬한 사견으로 천하의 萬變하는 이치를 어떻게 궁구할 수 있겠는가? 한 마디로 압축하면 “ 닦아라!”는 말씀이지요.

“투약은 형편에 따라서 적당하게 증감하고 치유는 경우에 따라서 선후를 가려서 할 것이다” 혜암선생이 제가 그 동안 입이 아프게 강조했던 말들을 딱 한마디로 간추려서 써 놓았습니다. “치유는 경우에 따라서…”라는 부분의 ‘경우’옆에다가 크게 괄호를 하고는 ‘陰陽‘이라고 써 넣으세요. 陰陽에 따라서 먼저 치료할 것과 후에 치료할 것 즉 오래 묵은 병, 최근의 병을 가려서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한 환자가 당뇨병을 10년 동안 앓아왔고 최근에는 위궤양까지 얻었다면 그를 대한 의사는 먼저 위궤양을 다스려야 합니다.

“열 가지 병에 동일한 처방을 쓰기도 하고, 하나의 처방에 여러 가지 약제를 합하기도 한다. 초보자는 例方에서 뽑아 쓰기가 어렵겠기에 方門을 분리한 다음에 이런 三系統으로 하여 補益, 和解, 攻伐의 세 가지 품성을 알게 하고 따로 운용법을 조금 설명하여 배우는 이가 책만 보면 대충 치료 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은 옛 사람이 한 것은 아니나 역시 對證投藥 정도는 될 것이다. 이대로 따라서 널리 응용하는 길을 추구하면 의문에 들어갈 것이다”

東醫寶鑑“을 기본으로 하는 이 활투를 집대성해서 편집한 곳이 ‘游藝室‘이라고 했습니다. 유예실이란 蕙庵公의 서재입니다. 1807년(순조 7년)에 태어나셨는데 고종 때에는 典醫도 지냈습니다. 또 찬화당이라는 약국을 열었던 당대의 명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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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운 육기 5

5.

여러분들은 모든 인연을 끊어야 합니다.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찌 를 닦지 않는지요. 몇 가지 잔꾀만 부려가지고 인간을 간파할 수가 있을까요? 옛말에 ‘추운 겨울을 나지 않으면 매화 향기가 코를 찌르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일체의 인연을 일단 쉬라는 얘기입니다. “黃帝內經“한 페이지를 품고 입산을 한다든가 스승을 구하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는 이런 최소한의 구도심은 있어야 합니다. 어쩌다 로맨스 영화를 보면 주르르 눈물을 흘리고, 키스신에선 가슴이 쿵쿵 거리고, 조금만 잘생긴 남자를 보면 좋아 어쩔 줄을 모르고, 어깨라도 슬며시 만지면 그저 좋아하는 여자들이나, 조금 반반한 여자가 끼어들어도 친구의 의리를 저버리는 남자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이런 말법시대에 를 모르거든 이라도 길러 남에게 베풀라고 제 사부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 “의리가 없으면 교활하긴 하나 지식이라도 길러라. 지식이 없으면 순종이라도 할 줄 알아라… ” 에 뜻을 둔 사람은 그 뜻이 마치 산과 같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단단히 뜻을 세워 쉬는 사이 없이 정진을 하면 어느 순간 한 생각이 확 트이면서 이 시원하게 뚫리게 됩니다.

“당신은 모든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고 받는 법칙은 삶에 있어서 변치 않는 하나의 길이 된다. 태양이 당신에게 생명을 주고 있는 것처럼 당신은 다른 길에서 태양에게 생명을 주어야 할 지도 모른다” 라고 라즈니쉬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태양에게 뭘 주고 있는지를 모르듯이 여러분의 사소한 재채기 한 번이 저 우주에 있는 어떤 별의 운명을 변화시킬지도 모릅니다.

“만물은 서로 관련이 되어 있다. 사람은 달의 먹이이다 라는 말은 그 속에 진리를 품고 있다. 보름달은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사람의 감정을 압도하므로, 인간의 자각을 먹이로 한다. 자각을 보름달에게 뺏긴 사람은 보름달에 대한 열정과 열광으로 반쯤 미치광이가 되기 때문이다. 보름에 바닷물이 거칠어지듯, 70% 이상이 물이며, 바닷물과 같은 염분 비율을 가진 사람의 육체와 영혼이 열정을 갖게 됨을 당연하다”

시인은 보름밤에 더욱 아름다운 시를 노래하고, 연인은 더 한층 낭만적이 됩니다. 옛날에 여자들이 남자들을 유혹하여 동침을 요구할 때 “달이 오늘 참 밝지요?”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달의 주기와 감성리듬의 주기, 여성의 생리주기가 28일로 같음과 상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과를 먹는다. 어느 날은 사과나무가 우리 육체를 먹을 것이다. 당신의 육체는 비료가 될 것이다. 당신이 사과를 먹고 있을 때 그 사과 속에 당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또 어느 날은 당신의 아이들이 당신을 먹을 것이다. 모든 것은 관련되어 있다. 이 관련되어 있음에 도라는 말이 뜻하는 어떤 것이 있다. 어느 누구도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Ego는 불합리하다. 오로지 전체성으로만이 나를 말할 수 있다. 부분들로 나를 말 할 수는 없다. 만일 부분들로 나를 말하려 한다면 그것은 단지 언어적인 형식에 불과하다. 그 부분들은 결코 나를 표현하지 못한다…. “

이렇듯 여러분들 현재의 모든 상황은 먹고 먹히는 상대적인 것이라는 점을 잘 생각해야 됩니다.

“모든 종교가 침략적, 남성적임에 반해서 도는 실로 여성적이며 묵종적이다. 기억하라, 진리는 여성적인 자각의 상태에 있을 때만이 온다. 당신은 진리를 정복할 수가 없다. 진리를 정복하려는 생각조차도 어리석다. 부분이 어떻게 전체를 정복하겠는가? 부분은 단지 허락될 뿐이다. 집착으로 인해 그릇된 개념을 갖게 된다면 그것으로 인해서 당신에게 진리가 허락되어 들어가는 것조차 막히게 된다”

이에 대한 좋은 본보기의 우화가 있습니다.

제비들이 가을날 남쪽으로 날아가자, 모든 짐승들은 제비와 남쪽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도 내년에는 남쪽으로 가야지!’ 하고 암탉들도 회의를 했습니다. 이듬해, 제비가 남쪽으로 떠날 때 암탉 한 마리가 그 뒤를 따라서 양계장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계속 달렸습니다. 며칠 후, 남쪽으로 떠났던 암탉이 돌아왔습니다. 많은 차들, 넓고 긴 도로, 사람들의 무리와 마을 등을 자기가 본대로 이야기 했습니다. “야! 굉장하구나” 다른 닭들은 그 암탉을 부러워하며 숭배했습니다. 이듬해 쯤 남쪽에서 다시 제비가 돌아왔을 때, 남쪽 바다와 따사로운 햇볕을 이야기 하는 제비들을 암탉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 암탉의 주장은 정당했습니다. 자기로서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다가 지쳐서 돌아오기까지 본 것들을 주장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암탉은 결국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 밖으로 나가보질 못했던 것입니다.

지식은 한 마리의 암탉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남쪽을 좀 안다고 폼 잡고 다닌 암탉에 불과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장자의 제자들이 모여서 ‘장자가 죽으면 어떻게 할까’ 의논을 한 끝에 땅 위에 두면 짐승이나 새의 밥이 될 것이므로 땅 속 깊이 묻기로 결정을 보았답니다. 이 말을 들은 장자가 깔깔 웃으며 “야! 이 미친놈들아, 네 놈들 지금까지 엉터리로 공부했구나. 땅속에 묻으면 구더기의 밥이 되지 않겠느냐? 이놈들 헛 공부했구나” 이렇게 꾸짖었답니다. 우리도 죽으면 먹이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지식은 한 마리 암탉처럼 멀리 가지 못합니다. 암탉은 자기가 본 것이 남쪽의 전부인 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남쪽으로 멀리 갈 이유가 없고, 또 불가능 합니다. 남쪽을 전혀 몰랐다면 모험심이라도 있을텐데, 그 앎이 방해가 되어 평생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지식을 버려라! 그렇게 하더라도 당신은 잃는 것이 없다’ 여러분! 아는 것을 다 버리세요. ‘그렇게 해도 당신은 그저 당신의 허위만 앓을 따름이다. 그리하면 당신은 아주 남쪽까지 갈 수 있다. 비로소 당신의 원천인 넓고 푸른 바다가 펼쳐질 것이다’ 우리는 지식을 죽여야 합니다. 는 죽음과 동시에 출발하는 것입니다. 한 번 죽기 전에는 결코 깨달을 수 없습니다. 과거의 지식과 이론은 물론이고 여러분이 가진 허위와 Ego 이 모든 것으로부터 풀려나야 합니다. 이것이 “黃帝內經“의 본 뜻입니다. 정원에 독초와 돌이 무성한데 아무리 좋은 꽃을 심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서양인이 찾아와서 주역을 묻는데, “어떠 어떠한 가 있는데 그 가 그 다음엔 어떻게 변합니까?”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64 어느 것으로도 변할 수 있습니다” 라고 했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변하는 법칙이 있지 않겠느냐?” 하고 반문하더군요. 서양사람들 사고방식이 매사가 이렇습니다.

한 사람이 배가 고프다면 어느 쪽이든 배를 불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陽明에서 太陰으로 갈 수가 있지요. 그런데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은 주지 않고 자꾸 약을 올린다면 陽明之氣에서 少陽之氣로 변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술을 오래 두면 식초가 됩니다. 이것은 少陰君火厥陰으로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식초를 오래 두면 다시 술이 됩니까? 안되지요. 厥陰少陰으로 변한다고 외우신 분들! 아시겠어요? 十干이나 十二支나 이런 모든 것은 하나의 양상일 뿐입니다. 외우면 안됩니다.

舍岩針法五兪穴을 외웠다 하더라도 모든 치료가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手陽明大腸經의 예를 보면, 手陽明大腸經은 건조하면서 차게 하는 힘이 있지요. 몸이 덥지 않은 환자의 陽谷, 陽谿하게 되면 몸이 너무 해질 수도 있으므로 이 때는 이 을 뺄 수도 있습니다. 암기해서 될 것 같으면 전 여러분들에게 이 내용의 99.9%를 가르쳐드릴 수 있습니다만 公案法, 五運六氣, 唯心的 안내 등을 다 동원해도 겨우 3%밖에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라즈니쉬의 말을 전합니다.

“죽음! 죽음에서 당신은 경계가 흐려지고 죽음에서 당신은 사라진다. 죽음에서 비로소 Ego는 녹는다. 죽음에서 마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에서 비본질적인 모든 것이 사라진다. 죽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은 가 무엇인지, 길이 없는 길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믿음과 사랑도 죽음의 길이며, 기도와 명상과 같은 학문 또한 죽음의 길이다. 명상은 자발적인 죽음이다. 죽음은 삶의 절정, 가장 높은 오르가즘이다. 당신은 절정을 섹스의 봉우리로만 안다. 그러나 섹스의 봉우리는 히말라야의 가장 낮은 봉우리에 불과하다. 섹스는 가장 낮은 출발이나 죽음은 가장 높은 정상이다. 서양의 심리학은 성을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동양의 심리학, 붓다의 심리학, 모든 동양의 도인들의 심리학은 죽음을 이해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서양은 이제 겨우 성을 이해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지만 동양은 아예 죽음을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차원이 이렇게 다릅니다.

“죽음을 이해함으로써 당신은 의식적으로 죽을 수가 있다. 만일 당신이 의식적으로 죽을 수 있다면 당신은 그때마다 새로이 탄생할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당신은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되고 그리하여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 속으로 거듭 되돌려지지 않는다. 당신이 깨닫기만 하면… “

이건 멋진 시와 같은 말입니다. 몇 가지 외웠다고 하는 하나의 교활한 Ego, 몇 가지 성취감 속에서 남을 굽어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죽음과 명상적 차원의 도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周易卦象의 6가지 감정적인 배경을 공부하는 것 이외에, 64가 서로 부딪치는 것까지는 제게 강의할 실력도 없을 뿐더러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64는 여러분 각자 그것의 의미를 열심히 공부하면 알게 될 겁니다. 周易卦象은 항상 두 가지가 복합이 된 상황에서 출발합니다. 그 복합적인 상황은 곧 ‘全體‘를 알기 위한 상황 설정이지요. 그런데 전체에 접근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상황 중 어느 하나에도 치우쳐서는 안됩니다. 음운학적인 예를 들어 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는 상대방의 말을 해석해서 그 뜻을 이해해야 하는 것과 별 다른 해석적인 의미는 없으나 긍정 혹은 부정의 뉘앙스를 가진 언어가 있습니다. 반가움의 인사를 나눌 때 “야… ! 너 참 오랜만이다”라고 하지, “우… ! 너 참 오랜만이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야구경기를 볼 때 ‘우(부정적인 의미)… ‘라는 비난과 야유의 환성은 질러도, ‘아아… ‘, ‘어… ‘하고 야유하지는 않지요. “아! 그렇군” 할 때와 같이 ‘아’가 긍정음이라면 ‘우’는 부정음입니다. 그런데 ‘아’와 ‘우’의 중간적인 의미의 음은 무엇일까요? 가령, “저하고 오는 토요일 데이트를 좀 해주시겠어요?” 라고 물을 때 긍정적이면 “아! 좋아요” 부정적일 때는 “에이! 집에 일이 있는데…”라고 하지만, “음… 생각해 보겠어요” 할 때의 ‘음– –‘은 중간적인 의미의 음이지요. 이것을 中央土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음양공부를 현장에서 그것의 증거를 보고 있는 것이지 결코 이론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 ‘는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므로 에 해당합니다. 물론 ‘우… ‘는 이 되겠지요. 동물울음 소리에 ‘‘가 많이 들어가는 동물이 있다면 그 동물은 어떤 성질이 많을까요? 틀림없이 中央土적인 기운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소는 생각이 아무리 많아도 좋다 싫다 말 한 마디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와 ‘우’와 ‘음’이 세 음을 합하면 어떤 음이 되겠습니까? ‘옴’이란 소리가 됩니다. 인도 브라만교에서는 우주전체의 소리만 오직 읊어라. 다른 명상 법 없이 온 종일 ‘옴’만 읊는 옴 명상법이 있습니다. 그리하면 자기 자신이 우주 전체가 되지 않겠느냐는 거지요. 우리 주위에 보면, 어떤 말이든 긍정하는 사람과 또 부정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모두 우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中央土가 너무 발달하여 너무 오래 생각하는 사람, 또한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중간에 머물러도 안되고, 긍정이나 부정에 너무 치우쳐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란 그저 왔다 갔다 하는 흐름입니다. 찼다 기울었다 하는 하늘의 달도 도라 할 수 있겠지요.

곡예사들이 줄타기를 할 때 좌나 우로 흔들리지 않고는 중심을 잡을 수가 없지요. 좌나 우로 조금씩 흔들면서 중심을 찾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흠! 나는 여기 와서 명상을 공부하고 를 배웠으니까 앞으로는 화도 안내고 좋고 싫음도 없도록 해야지” 이런 무식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나는 똥 누기 싫으니까 먹지도 않을꺼야!” 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잘 먹고 잘 살 생각을 해야지요. 여러분! 화도 내고 욕심도 내세요. 단 마음의 양면성을 깨어서 이해하세요. “아! 내가 지금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내 마음이 긍정적인 상태로 가는구나, 혹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런 것을 깨어서 읽고 또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만 인정하지 말고, 내게도 이렇게 미워하는 마음이 있구나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사람을 우둔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자기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 여름철 매미소리를 듣고 매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는 다른 곤충의 소리를 듣고도 그 곤충의 성질이 어떠하리라고 이내 알 수가 있게 됩니다. 같은 종류인 까마귀와 까치를 보세요. 그것들의 울음소리와 몸짓은 분명히 일관성이 있습니다(까마귀는 소리와 몸짓 둘 다 느리고 음흉, 까치는 그 반대)

五行五音으로 가 있지요. 한글을 처음 만들었을 때에는 열심히 발음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전 음을 발음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반치음, 중간음 등은 없애버렸고, 또 ㅆ, ㄲ, ㅉ 등으로 경화되어가고 있는데, 본래 한글이 가졌던 양적인 , 음적인 , 중간음을 다 발음하다 보면 전체적인 인간성으로 승화되는 수행자적인 차원이 있습니다. 불란서 사람들은 비음을 많이 내는데 비음이 가진 우울성이 그들에겐 있습니다. 가나문자에는 강한 음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으로 일본인의 성품을 알 수 있음은 물론, 그 강한 음이 어떠한 경락의 활동을 특별하게 하는 것인지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란 국가는 아주 흥망성쇠가 심합니다.

전체적인 음운을 개발해 낸 문자는 우리 한글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도 도가 아니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周易卦도 마찬가지로 어떤 라도 전체를 깨달으면 한 것입니다. 가 어디 있고 가 어디 있겠습니까. 周易을 읽어보세요. ‘아무리 元亨利貞하면 길하리라’라고 씌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天火同人이라는 이 는 ‘하늘과 불이 만나면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는 것이 이롭다. 元亨利貞하면 길하리라’라고 씌어 있습니다.

이란 이므로 ‘‘이고, 의 덕이므로 ‘‘이고, 는 벼[]를 칼로 쳐서 내것을 만드는 것이므로 ‘‘이며, 은 ‘‘에 해당하고, ‘‘는 사이에 들어갑니다. 무더운 여름날 숲에서 매미가 우는데 그것은 그 때밖에 울 수가 없어요(는 계절상 長夏, 매미는 長夏함). 결국 元亨利貞이란 곧 ‘全體‘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가 만난 이런 두 가지 상황이란 것 天火同人은 너와 나의 만남입니다. 그때 내가 어떤 상황이었고 네가 어떤 상황으로 만났는가 하는 복합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파랑과 빨강이 만나서 보라가 되지만 보라색의 상황은 빨갛지도 파랗지도 않지요. 그러나 분명히 이만난 것 아닙니까? 이런 상황을 표현하려고 주역의 괘는 언제나 두 가지가 합쳐져 있는 것입니다.

 
 

天干合五行

己合土

庚合金

辛合水

壬合木

癸合火

 
 

地合六經

少陰(君火)

太陰(濕土)

少陽(相火)

陽明(燥金)

太陽(寒水)

厥陰(風木)

 
 

十天干

天干











五行











陰陽

+

-

+

-

+

-

+

-

+

-

季節


  


  

長夏

  


  


  

方位


  


  

中央

  

西

  


  

 
 

十二地支(지지 오행 음양 계절 방위의 순)

 
 

天干













五行













陰陽

+

-

+

-

+

-

+

-

+

-

+

-

季節


  

  


  

  


  

  


  

  

方位


  



  


中央

  


西

  


 
 

五運六氣에서 甲子라고 하는 말 중에 을 가령 라고 한다면 少陰君火지요. 따라서 少陰君火가 복합이 된 것이 甲子年의 이미지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시켜 드리고자 지금까지 여러 잡다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런 까닭에 五運六氣法窮理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요. 聖人들이 만들어 놓은 이러한 것을 통해서 직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일단 앞의 도표는 꼭 외우십시오. 의 개념과 의 개념이 각기 하나씩, 둘이 되어 서로 혼합되어져서 어떤 기운을 형성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五運六氣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臟腑取象할 때, 이것은 추리방법입니다만 肝臟을 예로 든다면, 五行상 보는 것을 밑에다 두고, 六氣상 보는 것을 위에다 둔다 하면, 五行(그릇)이고, 六氣厥陰風木(내용물)이 됩니다. 이것의 取象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릇은 나무요, 내용물을 바람이 흐르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한번 상상해 보세요. “피리!” 예 좋습니다. 八卦 중 가령 兌卦를 소녀나 무당으로 取象하듯 肝臟을 피리로 取象하는 것은 같은 방식이지요. 오행은 의 성쇠이고 六氣多少라고 했는데, 肝臟의 예를 보면 그릇은 나무(의 성쇠), 내용물은 바람(多少)이 되는 것이지요. 이런 취상에 대한 연구는, 옛날에 周易卦象을 왜 써 놓았는지 그것을 이해시켜 드리기 위한 방편입니다.

날씨가 무더운 날 방안이 무척이나 덥다고 합시다. 밖에 차가운 공기가 있다면 문을 여는 행위를 통해서 밖에 있는 찬 공기를 안으로 들여보내게 됩니다. 이 창문을 여는 행위가 오행의 補瀉法이지요. 밖에 있는 찬 공기를 안으로 들여보낸다면 가 되겠지요. 한편 방이 무더울 때 방안의 더운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어도 시원해지지 않겠습니까? 더운 공기를 내보내려고 환풍기를 돌렸다면 이것은 가 되겠지요. 五行六氣에 대해 착각하지 마세요. 우리가 중심적으로 다루는 것은 六氣的인 사고방식, 즉 내용물[]에 대한 사고방식입니다. 위의 경우 더운 공기나 찬 공기는 둘 다 입니다.

肝臟은 피리요”라는 말을, 이게 무슨 말인가 하기에 앞서 두 가지의 복합된 상황을 이야기한 것이로구나 하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잠깐 열이 나는 두 가지 상황을 알아봅시다. 하나는 少陰君火, 다른 하나는 少陽相火지요. 少陰君火는 즐거워서 일어나는 충동()인데 성충동과 같이 후끈 달아 올라서 (불을 일으키는 욕망이므로 欲火라고 함) 뭔가 죽이고 소멸시키는 것이지만 즐거운 욕망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른 것은 자기 것을 만들면서 좋아 하는데 은 자기가 죽으면서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죽음과도 같이 내가 없어지면서 즐거워하거든요. 이렇게 불의 성품과 욕망의 성품을 동시에 갖는 少陰君火는 참으로 묘한 것입니다.


 
 

그런데 화가 났다거나(예:남에게 두들겨 맞았을 때) 순식간에 불끈 치밀어 오르는 , 전광석화 같은 , 이것을 ‘相火‘라고 합니다. 이것이 相火君火의 차이점입니다(內經
五運六氣 편에는 상화를 재상과 같다고 했음). 相火君火를 물질적으로 표현한다면 지구와 태양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지구 안에 있는 , 지구 속 열을 君火라고 한다면 태양이 비춰 주는 相火라 합니다.

우리의 생명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성적인 원동력입니다. 여러분 을 추하다고 하지 마세요(은 나중 少陰君火 편에서 자세히 다룸). 그것을 하나의 현상으로 솔직하게 받아들이세요. 相火는 화가 났을 때의 공격적인 열인데 이것 또한 나쁘다고 하시면 안됩니다. 여러분들에게 잔소리 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크지 못합니다. 지구는 태양이 없으면 크지 못하고, 달걀은 어미 닭의 따뜻한 품이 없으면 크지 못합니다. 이것이 相火입니다. 생명이 들어 오는 문을 命門相火라고 하지요. 여러분을 생명력 넘치게 하는 것은 君火보다 오히려 相火일 수가 있습니다.

결국 君火의 불과 相火의 불, 이 두 가지가 합쳐진 것이 인간의 미묘한 육체활동, 우주활동, 심적인 활동인 것입니다. 우주활동이나 지구활동은 너무 거창해서 모르니까 인간의 심적인 활동을 연구하면 쉽게 알 수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제가 접근하는 방법이므로 이렇게 君火는 성적인 충동, 相火는 공격적인 열이라고 주로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臟腑取象은 왜 공부하는가? 臟腑五行이고 六氣인 것을 예로 들어보면, 足少陰腎이 오행상 이고 육기상 少陰君火이지요. 그러므로 足少陰腎經에 흐르는 경락의 에너지를 이해하려고 하면 라 하는 五行的인 배경과 少陰君火라는 六氣的인 배경을 동시에 연구한 어떤 복합적인 상황을 공부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행상으로 공부하고 足少陰腎經에 흐르는 에너지를 이해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이야기입니다. 한강물이 맑고 차가우면 太陽寒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흙탕물일 때에는 어떻게 표현해야 됩니까? 기운은 물인데 거기에 太陰濕土가 들어갔으니까 丙辛
太陰濕土의 만남, 즉 丙丑이라고 표현하지요. 이것은 참으로 과학적이지요.그러나 이 표현이 그렇게 정확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한방의 어려운 점입니다.


삼강오륜의 ‘‘자가 벼리 강자입니다. 그런데 벼리는 어디에 쓰이는 것입니까? 고기 잡을 때 쓰지요. 그물을 잡아당길 때 위에 하나만 잡아당기는 것을 태극에 비유한다면 그물모양이 된다. 이것들만 잡아당기면 그물 전체가 움직이게 되지요. 五運六氣法이 아무리 세밀하다 하더라도 벼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전체를 낱낱이 이야기 할 수는 없고 마치 이것만 잡아당기면 전체를 다 이해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욕망이 어디 세 가지 뿐이겠습니까? 그러나 대체적으로 이 3대 욕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3가지 벼리가 되는 것입니다. 三陰三陽이란 六綱이 되는 것입니다. 즉 6개의 벼리가 되는 거지요. 세밀한 것은 여러분들이 알아서 미루어 추측해야 합니다. 입니다. 그럼 보라색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여러분이 창조해내야 합니다. 적절한 이름을 붙이기에 달렸지요. 그러므로 여러 기발한 취상들이 나오게 되는 동기가 입체적인 접근방법으로 여러분의 상상력을 동원해보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왔는데 뚱뚱하고 성질이 급하게 생겼다 그러면 뚱뚱하니까 이 많을 테고 그 가운데 相火가 들어가 있으니까 어떤 臟腑가 상했을까? 그러면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할 까? 이런 식으로 마치 치밀한 수사관과 같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러한 취상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느냐 해서 제가 이상한 방향으로 공부를 시켜드리는 것입니다.

足少陰腎이라 하면, 의 성쇠인 五行의 다소인 六氣라는 관점을 공부함과 동시에 八卦도 공부하고, 유심적인 차원도 공부하는 것입니다. 腎臟을 단순히 kidney 라고 할 때는 이지만, 足少陰腎經이라 하면 흐르는 어떤 에너지를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지요. 이것을 통해서 치병을 하려면 여기에 흐르는 에너지가 무엇인지 알아야지요. 인체 내에서 물을 기본으로 하고 내용물이 腎臟을 저장하고 있다는 이미지는 이렇게도 복합적인 상황입니다. “腎臟하면 精氣를 보한다”로부터 精氣란 어떤 것이며, 어떤 상황이겠는가 하는 것을 거꾸로 추리함으로써도 인식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이 방법이 참으로 이상한 방법이지만 이것은 혁명적인 방법이올시다.

腎臟의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해부학적으로 무조건 구성이 어떻고, 걸러내는 작용을 하고, 신우가 있고, 수뇨관이 있고…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유심적인 차원의 무형의 통로를 공부해야만 이 足少陰腎經의 에너지를 알 수 있겠지요. 다른 경락도 마찬가집니다.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기분을 느끼지요. 예를 들어, 殺氣를 느낀다면 “음! 너는 足少陽膽經하겠구나. 소화장애로 왔든 두통으로 왔든 너에겐 足少陽膽經해 주어야겠군” 이렇게 추측할 수 있겠지요. 여러분! 이것이 바로 舍岩針法이올시다. 그러니까 반은 독심술인 것이지요. 우격다짐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차근차근 이해해 나가는 겁니다. 제가 명상, 근본, 도, 무심 이런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의 맘 속에 있는 이론이나 지식의 선입관을 제거하려는 제 나름의 노력입니다.

그러면 동양의학 혁명 소고를 간추려 보겠습니다. 저는 직관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직관의 개발은 다분히 광범위한 뜻을 포함하며, ‘修行的
要素‘를 증진시켜줍니다. 직관이란 주관적이므로 자칫 그 요체를 잡기가 힘든 것처럼 보이나 주관적인 요소가 배제된 객관적인 직관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신념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을 두고 이 사람이 보면 少陰人이고 저 사람이 보면 少陽人, 또 다른 사람이 보면 太陽人이라면 이건 문제가 크지요.

저는 대학교 시절에 참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나라 四象醫學의 대가선생님의 진단학 시간에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저는 무슨 입니까? “으음, 자네는 耳目口鼻도 수려하고… 어쩌고 하니 太陰人이야” (아니! 제 이목구비가 수려해요? 그것보다는 제가 좀 엉큼하니까 太陰人이겠지요). 다음날, 다른 四象醫學의 대가인 병리학시간에 또 같은 질문을 합니다. “응… 자네는 少陰人이야. 한국사람의 100%는 少陰人 아닌가?” “이상한데요? 다른 선생님께서는 태음인이라고 그러시던데요” 그러면 자기가 내뱉은 말은 있고 그렇다고 다른 선생님 욕은 할 수 없고…

도대체 우리는 어디까지 혼란에 빠져야 합니까? 똑같은 병을 두고 어떤 사람은 大黃을 써서 몸을 차게 하라 하고, 어떤 사람은 附子를 써서 몸을 데우라고 합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것이 한의학입니까? 옛날 한약방이나 의원에서는, 제자를 자기 밑에서 10년 정도 꾸준히 공부를 시킵니다. 10년 이상 지난 후 어느 날, 환자가 오면 제자의 의견을 물어봅니다. 이렇게 해서 제자의 의견이 자신과 60% 이상 맞을 때 비로소 개업을 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내 것을 주고, 나를 희생하고, 나를 죽이면서도 기뻐하는 것이 이지요. 자기 자신의 이상을 기꺼이 희생시켜 가며 사랑하는 연인을 대학까지 뒷바라지 하는 여인을 우린 드물지 않게 봅니다. 少陰君火에 해당하는 식물은 아름답기 그지 없으나 생명력이 강하지 못합니다. 厥陰에 해당하는 것은 근육의 이미지이므로 과일로는 섬유질이 없으면서도 질기고 팽팽하며, 소음에 해당하는 것은 아름답고 수려하며 굉장히 예민합니다.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머리모양을 자주 바꾸고 싶어한다거나 이 옷은 오늘, 저 옷은 내일,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바꿔 입는 그런 마음이 少陰에 해당합니다. 화려하고 청초한 식물이 가녀린 모습으로 한들한들 피어 있으면 ‘그것은 少陰之氣가 많은 것이구나’ 하고 짐작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요즘은 남자들도 여성화를 추구하여 Unisex Mode가 유행하는데, 이런 양상은 비단 인간뿐 아니라 동 식물까지도, 필요 없는 장신구나 꾸밈을 가진 것은 모두 少陰君火의 작용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겠지요.

少陰之氣 성질을 지닌 식물 씨나 열매는 거의 먹을 수 없는데 반해 太陰之氣의 성질을 지닌 열매는 肉質이 풍부하지요. 촉촉한 습기에서 자라는 太陰은 대체로 원만한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열매나 나무 자체의 모양이 주로 통통하고 풍부하므로 인간의 식생활에 가장 요긴하고 少陰은 주로 관상용으로 애용되며, 厥陰은 주로 약용으로 쓰입니다. 그리고 少陰君火는 불이 타오르듯 한 모양으로 올라가는 느낌이 있는 것으로 그런 빛을 가진 것을 일컫습니다. 太陰肉質이 풍부한 과일이나, 나무로 보면 열매부위, 그리고 채소 종류의 대부분이 이에 속합니다. 무우나 버섯 따위가 太陰의 대표적인 식품이지요. 버섯이나 무우는 모가 나지 않고 대체로 둥근 모양을 하지요. 수분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지면 생김새가 둥근 식물이 잘 자랍니다. 엄마 얼굴을 그려보라고 했을 때 눈도 동글, 코도 동글, 입도 둥글 동글하게 그리고 어린이는 太陰의 덕성을 지닌 아이입니다.

또 어떤 아이는 삼각 사각으로 얼굴을 모가 나게 그린다거나 산과 나무를 뾰족뾰족한 예각으로 그리는데 그것에서는 번뜩이는 살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무심코 그리는 형상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이 지닌 감정이 표현되는 것입니다. 화가는 그림의 균형을 중요시합니다. 뾰족한 산을 하나 그리면 이어서 동그란 초가집을 그려 넣습니다. 그러면 陽明太陰이 조화를 이루게 되지요. 새가 날아오르는 걸 그린 뒤에는 폭포수가 아래로 떨어지게 합니다. 이렇게 조화를 맞추다 보면 사람의 심성도 탁마가 되는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그림이 명상의 좋은 매체가 되기도 했습니다. 옛날 어느 그림 스승이 뚱뚱한 제자가 오면 계속해서 을 그리게 하거나 피어 오르는 연기를 그리게 하여 의 상승을 느끼게 하고, 마른 사람이 제자로 들어오면 왼쪽으로 돌아가는 동그라미를 그리게 하여 외부의 기운이 빨려 들어 감을 느끼게 했다고 합니다.

기름진 태음의 땅에선 식물이 위로 뻗지 않고 원만한 모습으로 바닥에 깔리지요. 그렇다고 그리 크지도 않지요. 少陽之氣의 식물은 키가 크고 뾰족뾰족하여 어떤 불안감 내지는 發散之氣를 느끼게 합니다. 또 잎이 톱니바퀴처럼 날카롭고 특히 솜털까지 나 있는 것은 少陽之氣가 성합니다. 이건 식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맛이 대체로 쓰[]지요. 少陽之氣가 많은 칼, 창 따위는 그 자체를 보는 것 만으로도 섬짓함을 느끼지요. 언제라도 공격해 올 준비가 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고 코가 뾰족하고, 얼굴이 역삼각형으로 생긴 사람은 웃어도 조심이 되지요. 그저 단순히 뾰족한 것이(동식물을 막론하고) 少陽之氣殺氣를 가졌다는 관찰은 탁월한 식견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 전쟁이 터지려 할 때는 숲 속에 少陽之氣의 식물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나라가 부유해지려면 채소가 잘 자라고, 문화가 발달되려면 화초가 잘 된다고 합니다.

陽明少陽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키가 크고 가시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키는 少陽보다 더 큰 경우도 있으나, 가시가 少陽이라면 가시보다 좀 연한 솜털 종류가 陽明입니다. 그리고 陽明은 섬유질이 많습니다. 가시나무가 많은 동네에서는 탁발을 하지 말라는 스님들의 이야기가 있지요. 그런 동네에서는 차라리 동냥을 주고 오라고 합니다. 왜? 그 동네 사람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貧寒합니다. 陽明之氣의 식물은 여름보다 가을, 겨울에 강합니다. 그래서 사철 푸른 식물이 많습니다. 少陽之氣는 잘 먹고 배가 부른 후 그 힘으로 죽이려 하는 것인데 비해 陽明之氣는 배가 고파서 잡아 먹는 상황입니다. 파리지옥풀 같이 다른 동물을 잡아 먹는 기관이 특별히 발달되어 있는 것들이 많지요. 배고픔의 설움에 받쳐 마구 일어나는 에너지가 형상화된 것이 陽明의 Image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취하고자 하지요.

태양은 寒水라고 해서 물이 많은 것이라고 추측하면 안됩니다. 寒氣가 많으므로 딱딱하게 굳은 상황입니다. 어떤 여유로움이나 탄력성을 가진 게 아니라 완전히 위축이 된 것입니다. 흡사, 어린애가 이불에 세계지도를 그린 벌로 키를 뒤집어 쓰고 소금을 얻으러 대문을 나설 때 같은 위축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夜尿를 하는 마음의 방심을 소금을 얻어오게 함으로써 위축시키는 거지요. 에 해당하는 太陽寒水生長化收藏에서 간직하는 에 해당하지요. 이지요. 그러므로 간직하는 기운이 약해서 오줌을 곧잘 싸는 아이에게 소금을 얻어 오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멋진 조상들의 지혜입니다.

건드리면 확 움츠러드는 神經草인 미모사(Mimosa)의 위축성과 긴장성이 太陽입니다. 등줄기로 얼음물을 흘려 넣는 것과 같은 위축성이라면 이해가 쉽겠지요. 그런데 너무 위축이 되면 생식능력이 형편 없이 됩니다. 꽃을 피우지 못한다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지요. 아이를 너무 눌러 키우면 겁쟁이가 됩니다. 이렇게 太陽寒水의 기운이 할 때에는 少陰君火로 다스려 주어야 합니다. 자꾸 풀어 내리고 발산을 시켜주어야 하지요. 미모사가 잘 자라는 나라는 우리가 가서 보지 않아도 공포정치가 행해져 내려왔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지요. 위축되고 주눅이 들면 잘 크지를 못합니다. 또 겁이 많은 사람은 십중팔구 폭력자이기 쉽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어떤 식물을 갖다 놓아도 그것의 성질과 전반적인 특성을 알 수 있겠지요. 자란 환경과 번성하는 계절과 뿌리 내린 토양의 를 따지기만 하면 간단하겠지요. 겨자는 진흙 땅에 심으면 안되고, 木果(신맛을 가진 厥陰風木의 식물)는 통풍이 안 되는 온실 속에서 키우면 열매를 맺지 않고, 熟地黃, 二門冬(天門冬, 麥門冬), 黃精과 마찬가지로 배추를 모래땅에 심으면 안 된다는 이유 정도는 이제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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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운 육기 4

4.

내가 “음양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음양이란 “黃帝內經“에는 어떻게 씌어 있고, “醫學入門“에는 어떻고, 어떤 책에는 어떻고… 지금은 말들이 너무 어려워요. 또 너무 현학적입니다. 어렵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용어의 난해성을 즐기려는 태도, 高踏적인 모우션 등은 학자적인 생의 괴로움만을 연출합니다. 고인들의 교수방법에 등장하는 수많은 예와 일화 등은 진리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재치 넘치는 이야기지요. 사라져 가는 교수방법의 개발은 매우 시급합니다. 동양학이 재미 없는 학문이라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쉬운 전달 방법을 찾지 않는 가르침은 교사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우선 음양과 사랑에 관한 여러분들의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단편적이나마 東西洋의 견해를 레이 탄나힐 여사의 “성의 역사(Sex in history)”라는 저서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중국편

중국에서는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룬 상태를 라고 일컬었다. 도의 개념을 중심으로 발전된 철학이 道敎이다. 도교 사상가들은 인위적으로 짜여진 인간사회에 속박되지 않고 자연과 완전한 조화를 이룸으로써 장수와 행복, 심지어 永生까지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은 각자의 존재 속에서 자연 속의 음양 조화와 같은 조화를 자기 속으로 이룩해야 하며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서로 접촉하고 서로 흡입함으로써 음양의 두 요체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상반되는 두 힘인 음과 양은 여러 자연현상 속에서 볼 수 있다. 달과 겨울은 음이고, 해와 여름은 양이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여자는 완전한 음이 아니라 ‘少陰‘이며 남자 또한 완전한 양이 아니라 ‘少陽‘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서방에서는 물론 중국에서도 여러 가지 오해가 퍼져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가장 수동적인 여자에게도 양의 요소가 있고 가장 능동적인 남자에게도 음의 요소가 있다는 심리적 측면의 진리를 인식한 데서 나온 결론이었다.) 남녀 다같이 이 보조적인 요소가 원래적 요소를 보완하고 강화한다는 생각은 도교와 성에 관한 중국인들의 모든 사고를 발전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인도편

카마수트라(Kama sutra 인도말로 Kama는 사랑을 뜻하고 Sutra는 경전을 뜻하는 말로 인도의 성에 대한 경전이다)에서 사용된 ‘사랑’이란 단어는 한숨과 그리움, 요염, 가짜 열정, 또는 오비디우스에서 처럼 호색적인 거래를 위한 계산된 책략 같은 게 아니었다. 뭔가 그 이상의 거창한 것이었다. 철인 바챠야나(카마수트라를 편찬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는 분명히 오묘한 감정의 뒤얽힘도 인정하긴 했다. 하지만 그는 더 나아가 사랑이란 말 속에서 남녀간의 화학적인 반응을 인식했다. 그 반응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과 신경을 몽땅 사로잡아 그 밖의 것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를 뜻했다. 그것은 사랑을 할 때는 언제나 일어나는 현상일 뿐만 아니라 사랑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었다. 이 철인은 성 교본을 써가는 도중에도 이른바 어떤 규칙이란 게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또 아내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떠나서 남자는 반드시 ‘사랑 받는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걸 지적했다(3장 1절). 카마수트라는 연인들에게 등급을 따지지 말라고 건의하면서도 사랑 자체를 분류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랑을 만족할 만큼 분류하지는 못했다. 카마수트라에 따르면 사랑에는 4개의 유형이 있었다. 우선 성교만을 목적으로 하는 단순한 사랑, 이는 습관이나 약물과 같은 것으로 도박군이 도박을 사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음엔 키스 포옹 구강섹스처럼 특정 행위에만 집착하는 사랑이 있다. 다음엔 두 사람이 자석처럼 서로 이끌리는 사랑, 이것은 본능적이고 자발적이며 소유적이다. 마지막으로 상대의 아름다움에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일방적인 사랑이 있다(2장 1절).

유럽편

유럽 궁정식 사랑의 대표적인 인물로 길뎀(Guilhem)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서방기독교권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이었다. 그는 아랍의 영향을 받은 스페인의 연애시와 사랑의 철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관능과 유혹적인 생활에 익숙했기 때문에 그것을 깊이 고민하면서 그 문제에 대한 숙고의 결과를 시로 표현했다. 그는 주장하기를 ‘사랑은 굴종이 아니라 의기의 고양이요, 더러운 죄악이 아니라 신성한 신비요, 사랑의 선물을 받은 귀부인은 찬양 받아야 할 여신’이라고 했다. 몇몇 학자들은 그의 이 같은 관점의 변화에서 빈정댄 듯한 편의주의의 낌새를 배제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쨌든 마음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성문제에 대한 이런 불확실성은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복합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자주 논란이 되고 있지만 성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하는 시기는 풍요를 구가하는 시대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목적을 갖지 못하는 시기임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성이 지나치게 중요시되던 때는, 더 이상 정복할 곳이 없어진 국가의 ‘황금시기’였다. 로마제국 굽타제국 중국의 청대 루이 14세 때의 프랑스 영국의 후기 빅토리아기가 그 예이다. 그런 한가한 시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성적인 데로 쏠리게 되면 어떤 이들은 그것이 도덕적인 타락의 징조라고 개탄한다. 많은 사람들은 성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때로는 전부인 양 행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20세기가 되면서, 역사상 최초로 나타난 매스컴의 영향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상에서 우리는 東西洋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음양에 대한 인식을 고찰해 보았습니다. 결코 어려운 문구로 된 심오한 사상이라든가 논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습관 풍습 등이 진실을 이해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여러분들에게 간략히 소개한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평범하고 통속적이랄 수도 있는 이런 생활사에서 인생의 진실을 캐기 위해서는 직관의 개발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직관의 개발을 위해서는 예화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음양관을 배울 때 굉장히 어렵지요? 相生이 어떻고 相克이 어떻고 하는 것은 순전히 말장난입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개인적으로 선생님을 찾아 공부할 때는 그러질 않았습니다. 약간은 고지식하게 설명하시더군요. “선생님, 滑石이 왜 변비에 좋고, 또 애기를 낙태시킵니까?” 하고 학생이 질문을 하자, “먹어봐, 만져봐, 미끌미끌 하잖아. 지가 어디로 가겠어? 大腸에서 활동을 잘 할 것 아냐, 그러니까 매끄러울 자를 쓴 거 아냐? 고인들이 미쳤다고 미끄러울 자를 썼겠어?” 그러자 학생들은 그 말을 들으며 “어휴! 저러니까 한방이 개화가 안되고 시대에 뒤진다고 하지”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유기화학시간처럼 C.H.O가 어떻고 이렇게 육각형(벤젠고리)도 그려 넣고 했으면 여러분들은 귀가 솔깃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로 무얼 하자는 이야기입니까? 이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탄소원소와 금강석의 원소는 똑 같습니다. 원소가 같은 것이라 성분이 밝혀지는 것(다 밝힐 수도 없지만)은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겐 실험분석 기구보다 더 뛰어난 눈입 그리고 직관이 있습니다. 컴퓨터가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보다는 못합니다. 직관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의 순진무구한 눈, 생각 이전의 消息, 깨어 있는 마음, 지식이 개재되지 않은 마음, 공포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마음, 미래의 희망에 들뜨지 않는 마음, 겸손한 마음, 교만하지 않은 마음…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기화학식으로 설명을 해주면 잘 아는 것처럼 인식이 되고, “먹어봐! 매끌매끌 하잖아. 그런데 애기가 안 나오겠어?”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우습게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옛날 선생님의 그러한 설명들이 한 10년 뒤에는 이해가 가더군요. 단순한 논리이지만 이렇게 인생의 진리가 숨어있는 예화를 많이 들으면 차차 심오한 음양 감각에 익숙해집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許浚(조선 중기의 한의학자이며 선조 때의 전의. 선조의 명으로 의서 편찬에 착수 광해군2년(1610) “동의보감”25권을 완성. 이 책은 동양 최대의 의학서로서 당시 일본 중국에서도 널리 익힘)선생님은 말년에 낚시를 좋아했습니다. 그 분이 살생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향토에 있는 약초를 발굴하기 위해서 낚시를 핑계로 전국을 돌아다녔지요. 하루는 제자를 데리고 수원근처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 사이에 명의가 왔다고 소문이 좌악 퍼졌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낚시에 바늘도 달지 않고 음풍농월을 즐기거든요. 여러분! 허준선생님을 가볍게 생각지 마십시오. 그 분은 도인이셨습니다. 그 유명한 “東醫寶鑑“을 저술하시면서도 옛 사람의 말을 한가지라도 바꾼 것이 있습니까? 한 마디도 바꾼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보니까 옛 사람의 표현방식이 딱 맞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허준 선생이 있던 수원 근처의 낚시터로 어떤 부인이 시름에 찬 얼굴로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참 용하시다는데 제 소원을 좀 들어 주십시오” “무엇이오?” “결혼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애기가 없는데 애기를 가질 방법이 없을까요?” 그러자 선생은 그 여인을 한 번 쓱 보더니 “이슬을 하루 한 되 씩 100일 동안 잡수시오”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 여인은 100일 동안 이슬을 먹고 난 10개월 후 애기를 낳았습니다. 임신 못하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슬을 먹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임신을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허준 선생이 전국을 한 바퀴 돌다가 그 동네를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임신 못한 아낙네들이 몰려와서 “아니, 선생님! 우리는 왜 임신을 못합니까? 선생님 처방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허준 선생이 “무슨 이슬을 잡수셨소?” 하고 물으니 “애기 낳는 게 제 소원이라 새벽이슬을 먹었습니다” “그럼 새벽 이슬을 잡수셨단 말이오?” “네 물론입니다” “저녁이슬을 잡수셔야지 새벽이슬은 안됩니다”라고 점잖게 말하고 되돌아 갔습니다. 이런 걸 우화라고 합니다. 혹시라도 좋은 처방 배웠다고 써 먹지 마세요. 우화란 그 속에 들어 있는 비유만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새벽이슬은 풀 끝에 달렸다가 태양이 뜸으로 해서 막 발산되려는 이슬이고, 저녁에 맺힌 이슬은 하루의 생성과 성장이 모여 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임신과 그 의미가 같은 것이지요.

임신을 시키는 데에 신맛이 좋겠습니까? 단맛이 좋겠습니까? 아직 여러분 육경의 맛에 대해 아무런 공부를 안 했지만 그냥 생각해 봐도 왠지 신맛이 적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러나 이것을 뚱뚱한 사람에게 가르쳐주면 큰일납니다. 신[]맛은 거두어 들이고 매운[] 맛은 발산을 시키지요. 그러므로 해삼장사들이 해삼을 싱싱하게 보이게 하려고 식초를 뿌립니다. 신맛이 마른 사람에겐 좋지만 뚱뚱한 사람에게 쓰면 안되지요. 오미자가 불임병에 좋다고 하는데, 五味子木果 같은 신[] 약을 마른 사람에게 쓰는 것은 좋으나 뚱뚱한 사람에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이 많은 신맛으로 물을 더 넣어주면 큰일이지요. 뚱뚱한 사람은 물꼬를 내고 利水를 시켜 물을 빼주어야지요. 옛날에 조조가 적군에게 쫓길 때 군사들이 심한 갈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저 산만 넘어 가면 살수(신맛)가 있다고 하자 병사들의 입안에 침이 고이게 되어 잠시 갈증을 잊고 무사히 산을 넘어 후퇴를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것이 ‘韓方‘입니다. 이것이 바로 ‘陰陽觀‘이고요. 그런데 이런 것을 외우거든요. 이치만 알면 아무것도 아닌데 외워서는 결코 깨우치지 못합니다.

어느 날 허준선생에게 한 여인이 달려와서 “우리 며느리가 애기를 낳고 있는데 애기가 나오질 않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하자 이끼 낀 여울목의 돌을 한 솥 삶아서 그 물을 먹이라 했지요. 그랬더니 글쎄 순산을 했습니다. 이걸 보고 제자가 “石室秘綠(청나라 진사탁(우경지, 호원공, 산음인)의 저서로 모두 6권으로 되어 있음. 주된 사상으로는 128법을 나누어 방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보신 보비 서간에 치중하고 있음), 傷寒論, 黃帝內經 어디에도 없는 처방인데 어찌 제겐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까?” 하자, “너에게 수없이 가르쳐 주었건만 네가 이 없어서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 것이다”라며 꾸짖으셨다 합니다. 또 한 여인이 달려와서 “선생님 우리 며느리도 애가 나오지 않습니다”고 하자 그 집에 가서 산모를 보더니 “이것 참 큰일났군”하고는 산모의 머리채를 풀어서 입에다 넣었어요 그러자 여인이 구토를 하더니 또한 순산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무턱대고 이렇게 따라 하면 큰일 납니다.

앞의 부인은 羊水不足(요즘 말로는 早期破水)이므로 빠르게 흐르는 여울목에 낀 이끼(매끄러움의 극치)의 매끄러운 성분을 썼던 것이고, 두 번째 경우는 산모의 腹壓不足이므로 구토법을 썼던 것입니다. 첫 번째 것은 양의사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두 번째에 대해선 아무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方藥合編下統 82번에 禹功散이라는 게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不拘時腹
小時以鷄翎探吐痰之…’ ‘닭 깃으로 목구멍 담을 뒤져서 催吐시켜라’라고 씌어있지요(禹功散의 상세한 내용은 뒤에서 다룸). 인체는 마치 처럼 되어 있어서 위를 뚫어주면 아래로 나오게 되어 있지요. 옛 사람들은 이 자연의 이치를 이용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대롱에 물을 넣고 위를 막으면 물이 밑으로 나오지 않지만, 위를 열어주면 대롱 속의 물이 주르르 흐르거든요. 그래서 옛날 서양산부인과 의사들 가방에는 언제나 닭 털(구토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또 변비에 걸렸을 때 우리 인체의 맨 위에 있는 百會穴에 침을 놓는 것이나 설사를 할 때 百會穴에 뜸을 뜨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바둑을 둘 때의 병법이 환자들 치료하는 방법과 유사한 것이 많습니다. ‘貪不得勝(탐욕하면 이길 수 없다)’라는 말처럼, 병을 고치겠다고 너무 욕심을 내면 병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남의 경계에 들어갈 때에는 완만하게 들어 가라’ 라는 것도 있습니다. 중병이라고 하여 처음부터 약을 너무 강하게 쓰면 안됩니다. 약은 서서히 써야 됩니다. 열병에 大黃이나 망초(芒硝) 같은 약을 조심 없이 쓰면 마구 타오르는 불에 어설프게 물을 잘못 붓는 격이 되므로 薰氣가 올라서 죽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을 치료하는 데는 작전이 필요합니다. 암을 치료할 때, 암 세력이 강한데 무조건 이기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적당하게 조화를 시켜줘야 합니다. 사소한 병이 중병으로 되기까지에는 하루 이틀 걸렸겠어요? 손자병법에도 ‘적의 10배가 되면 공격하여 죽이고, 두 배면 시기를 보고, 적과 비슷하면 화해하고, 적보다 수효가 적으면 도망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36계 줄행랑은 손자병법의 맨 마지막에 있는 방법입니다. 못 고치는 병은 못 고치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다 고치겠다는 욕심은 금물입니다.

맛()과 소리 ()와 형상이 六經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한 나라 언어의 성조를 듣거나, 노래를 듣거나, 어떤 사람의 행동상의 특징을 미루어, 각기 어떠어떠한 기운(어떤 경락)이 많이 작용하고 있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군가와 사랑노래, 교가가 각기 다른 분위기인 것은 각기 가진 기나 기운의 종류와 강약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수의 노랫소리만 들어도 ‘음~ 당신은 어떤 기운이 강하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한의사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동양의학자입니다. 이렇듯 약초의 맛, 냄새를 딱 보고서 추리할 수 있고, 목소리를 듣거나 형상, 모습을 보고서도 알 수 있는 추리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오운과 육기가 혼합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달마대사(중국 선종의 초조. 남인도 향지국왕의 셋째아들로 본명은 보데다라. 520년(양나라 보통1년) 중국으로 건너와 소림사에서 면벽9년하고 2조인 혜가에게 법을 전한 뒤 영안1년의 10월 5일에 입적함. 당나라 대종이 원각대사라고 시호를 내림.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보리달마”라 불림) 시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외부에 있는 일체의 모든 인연을 쉬고 (外息諸緣)

안으로 헐떡거리는 마음을 쉬어라.(內心無喘)

마음이 마치 장벽과 같이 단단하면(心如墻壁)

가히 도로 들어간다.(可以入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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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운 육기 3

3.

주역은 인간사이므로 周易八卦를 공부하다 보면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보이지 않는 불문율을 공부하게 됩니다. 인간이 대체적으로 음과 양으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남편과 아내의 경우와, 남편과 시어머니, 아내와 시아버지 사이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특히 대가족일 때는 그 집안 사람 사이의 예절, 혹은 불문율이 얼마나 복잡해 지겠습니까. 少陰君火인 사위와 太陽寒水인 며느리는 다른 혈통에서 들어왔으므로 그 집안 내의 엄청난 변수로 작용하게 됩니다(그래서 사위나 며느리는 잘 맞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천지가 있는데 해와 달이 중간에서 온갖 조화를 다 부림과 같지요. 태극기의 天地日月 4도 인간관계와 꼭 같이 비유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며느리 한 사람을 중심으로 볼 때에도 며느리와 아들, 며느리와 시누이, 며느리와 시아버지… 등 무수한 관계가 있는데 가족구성원 서로 서로의 관계는 얼마나 복잡하고 또 경우가 많겠습니까. 그렇지만 이러한 관계! 이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불행하게 됩니다. 이 관계의 기초훈련을 시켜주는 것이 바로 주역입니다.

만두나 찐빵을 손으로 눌러보면 그 알 속이 약한 부분으로 터져 나오듯이 우리 인체내의 12장부 중 하나만 이상이 생겨도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부인이 아프다고 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먼저 우울해집니다. 남편이 우울하니 남편의 어머니가 또 우울해집니다. 다시 아버지도 우울해집니다. 한편 부인에게 병이 생긴 원인도 남편으로 인해서 혹은 시어머니, 시누이, 시아버지 등 다양해 집니다. 이렇듯 복잡하고 다양한 것입니다. 부인이 병이 났다는 사실 하나로부터 파생되는 일이 이러한데 복잡다단한 인간사에서야 오죽하겠습니까.

간장병의 원인이 꼭 쓸개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다만 쓸개로부터 오기 쉽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장병! 에 병이 생겼으면 水生木이니까 腎臟하면 되겠군’ 이런 식으로 착각하지 마세요. 인체는 평등한 유기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디서, 어떤 원인으로 병이 왔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五行理論이나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六氣理論도 중요하겠으나 결국은 여러분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경락 중 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는 24이지요. 이 중 하나를 선택하는 확률은 1/24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자에게 적합한 하나의 방법을 택하기까지 여러분이 깨어 있지 않고는 힘들다는 말입니다. 몇 가지 공식만을 막연하게 외워서 쓰는 방법과는 아주 다릅니다. 확률이 1/24이므로 저 역시도 끊임없이 토론과 그룹미팅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이런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은 ‘깨어있음’입니다. 우주가 그러하듯 순간순간의 변화가 극심한 우리 인체의 病變을 여러분이 이해하려면 반드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장병이 발병했을 때 쓸개, 소장, 심장 등 12가지 상황과 治法上의 복합적인 상황을 보아야 합니다.

方藥合編中統의 6번 靈仙除通飮을 보면 “治肢節… “‘風寒이 겹쳐 濕熱이 나는데 이것이 肢節사이로 유주할 때 일어나는 통증을 다스린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厥陰(厥陰風木), 太陽(太陽寒水), 太陰이므로 위의 병은 3개의 경이 혼합된 것이지요. 으로 볼 때 빨강, 파랑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보라색도 있다는 것이지요. 또 風濕이 합쳐질 수도 있고, 寒熱이 서로 교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TV에서 과학자와 의사가 대담을 하는 데 한약이나 生藥으로 治病하지 말고 모든 것을 과학으로 해결하라더군요. 과학은 분류이고 이론 아닙니까? 병을 치료 하는데 있어서 이론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론과 지식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합니다. 한 순간이라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질병이 나타날 수 있는 원리와 실제로 질병이 서로 연관되어 나타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시 八卦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周易八卦를 인간세계에 대비시켜 운동성이 없는 평면적인 관찰을 했습니다. 2차원적 평면관계로 보았지요. 2차원에 공간적 요소를 첨가하면 3차원이 되고, 공간에 시간(운동성)을 부여하면 4차원이 되지요. 운동성 차원인 4차원까지는 못 본다 할지라도 우리 인체를 뒤돌아 살펴보면 항상 로 나뉘어집니다. “黃帝內經五運六氣 편 첫머리에 보면 ‘左右陰陽之道요, 天地萬物上下이다. 水火陰陽의 상장이고, 金木生成始終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始終, 象徵, 上下, 左右, 表裏 등이 陰陽입니다. 이렇게 陰陽을 나눈 것은 陰陽자체를 일정한 기준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그냥 전체적으로 나눈 것입니다.

內經五運六氣 편에 岐伯이 말하기를 ‘그러하오나 얼핏 보아서 다른 두 개의 법칙을 합하여 생각하면 거기엔 일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대체로 음양을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이것을 넓혀서 만가지로 분류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五運六氣의 음양이치가 상식적인 陰陽五運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것입니다. 요컨대 병은 우주만물의 현상이며 이 현상이란 어떠한 것에 대한 상대적인 부조화이므로 어떤 것이 상대인가를 추측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므로 제가 설명하는 오운육기 법칙이 오행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들은 일단 의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렇게 설명하는 이것 대로 좋은 것이니까요.

左肝右肺‘라는 말이 있습니다. 은 인체의 오른쪽에 있는데 왜 좌측이라고 하는가? 臟腑論으로 볼 때는 右肝이지만 左右에 각기 대표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氣論이지요. 바로 右氣左血論에서 左肝右肺論이 나온 것입니다. 左肝右肺論은 경락학적으로 이해해야지 臟腑가 붙은 위치나 모양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유심적으로 본 八卦유추를 보십시오. 오른쪽은 , 왼쪽은 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우리는 에 대한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합니다. , 입니다. 또 한방에서는 이란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 강의의 기본은 ‘한방에 나오는 어떤 언어라도 그것은 인간이 일으키고 있는 생각이다’라는 전체조건하에 진행이 되기 때문에 그 의미가 다소 생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체는 전체가 로 뭉쳐져 있는데 보편적으로 여성은 하다고 보고 남성은 하다고 봅니다. 물론 어떤 남성은 하고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을 많이 일으키면 기가 실해지고 어떠한 생각을 많이 일으키면 혈이 실해지겠습니까? 하는 쪽은 陰的이니까 하다 할 수 있고, 주는 쪽은 陽的이므로 하게 되겠지요. 남자들은 주길 좋아하고 여자는 받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이 陰陽의 조화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Egoist입니다. 이 Ego에는 ‘나’ ‘너’라는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되지요. ‘나’가 ‘우리’가 된 것은 Ego의 확대일 뿐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 관념의 최고의 분리의식입니다. 나라고 하는 상태, 나를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은 陰的인 사람이고, 남을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은 陽的인 사람입니다. 남녀가 함께 살다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만 남자는 여자의 속성을 이해할 수 없고 여자는 남자의 속성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남녀를 공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성인이나 道人이지요.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밤을 새워 바둑을 두는 남자들을 여자들은 이해할 수 없지요. 여자들은 돈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고 다하지만 실리가 없으면 안 합니다. 그런데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때, 남자는 주위를 두리 번 거리지만 한 번 사랑에 빠진 여자는 남자에게 기댄 채 도취가 되어서 누가 보든지 말든지 아예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구상의 음양이 만나게 되는 아프지 않은 형벌이자 사랑이 일어나는 동기입니다. 이 陰陽의 조화로, 그 힘에 의해서 각각 서로 다른 에너지가 만나서 그 무언가 모르는 세계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성적으로는 오르가즘, 또는 無我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깨달음이란 무아의 오르가즘과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율법학자가 와서 하는 말이 “형이 죽으면 형의 부인을 동생이 取妻하고 그 동생이 죽으면 또 밑의 동생이 물려받고 해서 한 여자를 칠 형제가 물려받았을 때, 죽어 하늘나라에 가면 어느 남자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하고 교활한 함정이 들어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는 결혼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는 결혼이 없는 세상은 생각지 않고 오직 누구의 마누라가 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자기 남편 이외의 섬김을 간음이라고 설법했던 예수님 말씀에 꼬투리를 잡으려는 이 교활함. 이것은 깨달음의 세계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지상세계와 비교될 수 없고,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어떤 세계, 그것이 바로 도인 것입니다.

인간이 마음 속에 가진 ‘나’, ‘너’라고 하는 . 이것은 아주 고질적인 입니다. ‘나’, ‘우리’를 너무 강조하면 陰的인 것이 발달되고, 이 발달된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좌측은 ‘나’를 많이 강조한 사람이고, 우측은 ‘너’를 많이 강조한 사람입니다. 이런 식의 유심적인 결부는 잘 생각해보면 근거가 있는 이야기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대가족제도에선 자식교육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시켰습니다. 이 교육은 전적으로 자유교육입니다. 즉 가만히 지켜보는 교육이지요. 그런데 요즘 부모들의 자식교육은 부모의 야심을 주입시키는 교육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지혜, 이것이 없으면 국가도 흥할 수 없고 학문도 흥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연세 많은 분들의 한방 경험을 고리타분하다고 무시를 하고 배척을 합니다. 실험을 해서 화학적인 성분 분석을 해야 옳고 바른 줄 알고 있습니다. 노인의 지혜, 단순하게 보는 지혜를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는 좌측에 해당하여 여름에서 겨울까지 가는 이 되고, 이 됩니다. 後天, 先天이라고 합니다. 지금 시각이 12시 5분 전이라면, 先天에서 後天으로 바뀌려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手少陰心經火氣가 강하기 때문에 옛날 인류 5천년의 변화가 지금은 한 달이면 가능한 것도 있다고 합니다.

앞에서 乾卦督脈, 坤卦任脈에 해당한다고 말씀 드렸는데 이것은 ‘유심적인 한 생각이 경락을 이루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증거이므로 이렇게 따로 장을 만들어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督脈任脈은 우리가 지닌 경락의 유심적인 통로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도구라는 거지요. 남자의 임맥은 會陰에서 출발 하는데 반해 여자들은 거꾸로라고 합니다. 독맥은 이고 임맥은 地氣를 감독한다고 하는데 얼굴로 비유를 해봅시다. 上下운동을 하는 것으로 눈()과 입()이 있는데 눈은 윗 눈까풀이 움직이고 입은 아래턱이 움직이지요. 또 얼굴의 구멍() 중 2개는 들어가고 2개는 밖으로 나와 있지요. 밖으로 나온 코와 귀는 이고 들어간 눈과 입은 입니다.

好相이라거나 耳目口鼻가 수려하다는 것은 얼굴의 조화가 좋은 것을 말합니다. 눈은 아주 작은데 코가 갈구리같은 메부리코라면 성질이 급한 사람이 틀림없으며 남 흠잡는데 능한 사람입니다. 한편 눈은 쌍꺼풀지고 코가 납작하면 남녀 불문하고 색을 밝히는 사람입니다. 어린애가 사람을 보고 참 예쁘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린애가 어떻게 예쁜걸 알까요? 그건 陰陽의 조화에 대한 직감입니다. 가장 쉬운 관상법은 입술을 보는 것입니다. 윗 입술이 (督脈)이고 아랫 입술은 (任脈)입니다. 그런데 ‘‘자는 일임한다, 신임한다, 믿고 맡긴다는 뜻이고 여기에 계집 자를 추가하면 회임한다, 임신한다, 품는다는 말이 됩니다. 한편 ‘‘자는 앞에 (볼) 자를 붙여 “감독한다, 나는 너를 의심한다”는 말이 됩니다. 즉 임맥은 긍정적인 상태, 독맥은 부정적인 상태를 의미하지요. 앞으로는 사람을 대할 때 입술 끝만 보고 이야기를 하세요. 그러면 그 사람의 진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속이 상해서 “에이 콱 죽어버리고 싶다”고 할 때 윗입술이 아랫입술을 덮은 입 모양이 되지요. 즉 하나는 , 하나는 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족스러울 때의 표정은 아랫 입술이 윗 입술을 덮으며, “으응” 합니다. 만족과 신뢰로 긍정할 때는 임맥이 작용합니다. 대화 중 말로는 “예예” 하면서 윗 입술이 아랫 입술을 자꾸 덮으면 그 사람은 내 말을 믿지 않고 있는 증거입니다.

입술이 교차되는 곳은 天地기운이 교차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입술만 보아도 병의 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자들(督脈의 성질)에게 감독하고 의심하라 하면 잘 하지만 믿으라면 잘 듣지 않지요. 그러나 여자들(任脈의 성질)은 터무니 없이 잘 믿지요. 임맥과 독맥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데에 촛점을 맞추십시오. 선천적으로 독맥이 발달된 사람은 감독하는 일을 잘 하므로 작업장 감독관을 시키면 딱 맞습니다. 듬직하게 생긴 사람이 아랫 입술이 나와 있다면 그 사람과는 함께 일을 해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아랫 입술이 너무 올라간 사람은 터무니 없이 믿으므로 도둑놈도 믿고, 강도도 믿고 따르는 어리석은 신심의 소유자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여러분이 경락의 개념을 깨닫거나 여러분의 마음을 관찰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예입니다. 나머지 여섯 경락도 모두 이런 식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저 예민하게 관찰하지 못해서 모를 따름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사물의 본심을 통찰해야 합니다.

날으는 새의 예를 들어보면, 독수리의 부리는 윗부리가 아랫부리를 덮고 있습니다. 즉 督脈이 발달되어 공격적이고, 의심이 많고, 경계심, 복수심이 강합니다. 반면에 펠리칸과 같은 새는 아래턱이 발달되어 있어서 아래부리 속에 새끼를 넣고 다닙니다. 선천적으로 任脈이 발달된 게지요. 저하고 공부를 잘하고 나면 새 관상, 토끼 관상, 물고기 관상까지도 볼 수가 있지요. ‘저 물고기를 먹으면 몸이 냉해지겠구나!’ 혹은 , ‘더워지겠구나!’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상어를 보세요. 독맥이 발달되어 있어서 성질이 사납습니다. 경계심, 의심이 많고, 공격적이고 陽的이므로 머리 쪽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이 상어고기를 많이 먹는다면 어디가 발달될까요? 독수리의 경우는 머리가 작은 반면 깃털의 발달이 좋으므로, 성질이 나면 상체 쪽으로 에너지가 쏠리므로 털이 꼿꼿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명태는 윗 턱보다 아랫 턱이 훨씬 더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제사에 명태를 쓰는 까닭은 명태의 이미지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상어와 명태 중 어느 쪽이 알이나 새끼를 많이 낳겠습니까? 물론 아랫 턱(任脈)이 발달된 명태가 임신에 능하겠지요. 이렇게 임맥과 독맥만 관찰하여도 그 자체의 성품을 반은 간파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韓醫學徒라면… ) 이런 이야기에 충격을 받으셔야 합니다. 본과 3, 4학년 중에 많은 고민을 해 본 사람은 충격을 받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쉽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乾卦는 ‘君子가 종일 건건하여… ‘ 군자는 하루 종일 기분 좋게 누굴 믿으라는 말이 아니고, 종일 근신하고, 경계하여 삼가고, 나를 깍고, 자기를 죽여서 살신성인할 생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坤卦는 ‘항상 유순하고 부드럽고… ‘무엇이든 받쳐주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父德母德取象해 낸 것이지요. 嚴父, 慈母의 이 두 양친의 조화는 중요합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이 버릇이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일방적으로 임맥의 영향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을 감독하고, 의심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이 전에는 일찍 귀가를 했는데 요새는 매일 밤 12시 넘어서 들어오는데 고민이 있어 보이면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그런가? 내가 어떻게 돕지?” 이런 의심을 해 봐야 합니다. 무조건 믿고”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하면 남편은 멀지 않아 지겨움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너무 독맥만 발달되어 의심이 많아도 곤란합니다. 임맥과 독맥이 서로 조화가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임맥과 독맥을 각각 심리적인 상황으로 나눠서 설명하는 강좌는 우리 한방계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환자가 왔을 때, 그 환자의 아래 윗입술이 평등하면 다른 데에서 원리를 찾지만 만일 그렇지 않으면 독맥과 임맥을 자극시켜주면 됩니다.

아무리 유명한 한의사를 찾아가도 실제적인 경락과 심리적인 특성을 결부시켜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환자의 특성에 맞춰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많은 방황과 갈등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한방의 새로운 접근방법을 찾게 될 것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D P교수님과 제가 학교 다닐 때 함께 하숙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히프가 커서 ‘오리 궁둥이’란 별명을 가졌는데,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해요. 그저 자고 쉬는 것만을 좋아합니다. 이런 분들은 陰德이 있습니다. 인내심이 강하고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반면 머리가 크고 몸통이 작은 사람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陽的인 사람은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陰的인 사람은 몸집에 비해 머리가 작습니다. 독맥과 임맥으로 표현되는 이 두 특성은 기본적인 마음의 어떤 긍정적인 상태와 부정적인 상태를 의미함을 알아야 합니다.

周易이 경락으로 있음을
乾天,
兌澤,
離火,
震雷,
巽風,
坎水,
艮山,
坤地, 任脈督脈의 예로써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방이란 참 오묘한 학문입니다. 환자를 보고 “임맥을 해야겠군”, 혹은 “독맥을 해야겠어” 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臟腑상태라든가 觀形察色도 했겠지만 그 환자의 성격이 어떻겠구나를 간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七情浮沈을 알지 못한다면 이것은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환자가 오면 그 환자의 긍정적인 차원과 부정적인 차원,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남을 위주로 생각하는가, 욕심이 많은가, 분노가 많은가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체내의 經脈이 서로 상대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상대성이란 곧 우리 마음의 상대성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대성을 예민하게 관찰해야 각 경락이 지닌 특징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육은 거의 주입식 교육이지요. 자신의 알고 있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형식인데 저는 그런 식으로 교육시키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본래 갖고 있는 것을 재확인하고, 확대 해석을 통해서 보다 큰 눈[]을 뜨고 올바른 길을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 속의 기쁨과 슬픔, 긍정과 부정, 적극과 소극… 들을 해야 임맥과 독맥을 깊이 인식할 수 있듯 여러분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상태까지, 그 갈등의 작은 부스러기까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 바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관찰함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陰陽四象八卦五行의 움직임과 六經을 이야기 했고, 특히 六經의 상관관계를 알기 위해서는 직관을 터득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병이란 엄청나게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黃帝內經“을 보면, ‘가까운 것을 빌어 먼 것을 얘기하고, 안을 터득해서 바깥을 안다. 몸 가까운 일을 충분히 장악하고 있으면 신변에서 먼 일까지 반드시 추리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긍정과 부정은 天地問題이고, 나와 너는 氣血問題이므로 이러한 상태의 에너지를 잘 관찰하면 임맥, 독맥이 갖는 병환까지도 관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모든 것은 모두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공부를 자기 관찰없이 남의 이론만 등장 시켜서 하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內經“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뛰어난 학술을 이용하는 자는 점점 번영하고, 경멸하여 돌아보지 않으면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 학술의 정도로 가지 않고 억측을 멋대로 하여 엉터리 학술을 논하는 자는 하늘의 벌을 받을 것이다’ 라는 경고를 “內經“은 여러 차례하고 있습니다. ‘사물의 첫머리를 알면 끝도 완전하고 명백하게 察知할 수 있다’ 사물의 첫머리란 사물을 볼 때 일어나는 여러분들의 인식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요 마음입니다. ‘이러한 정연한 조리를 가미하되 빠진 것 없이 영원히 보존토록 하라’ 고 학문에 대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경희 학회지 “醫仁“에 ‘東洋醫學革命小考‘란 제목 하에 한의학의 문제점을 제시해 놓았는데 여러분이 그 내용을 참조해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속의 내용을 한 마디 인용해 보면 ‘건강한 동양의학자라면 “本草綱目“에 없는 국내 처음으로 수입된 약초라도 그 성분을 알아낼 수 있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엔 건강한 동양의학자라는 전제가 붙습니다. 입이 쓰디쓴 담배 골초에서 맛을 보라고 한다면 (감별하라고 한다면) 문제가 있겠지요. 맛을 제대로 본 후에라야 무슨 경락에 入經하겠는가를 알아 낼 수 있겠지요.

方藥合編“의 구성은, 맨 윗 편은 본초에 대한 지식, 上統하는 약, 中統和解하는 약, 下統하거나 치는 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령 杏林書院版 182페이지 136번 附子를 보면 附子藥性, 歸經 등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설사약은 설사시키는 약 입니까, 설사를 멎게 하는 약 입니까? 후자지요. 해열제는 열을 식히는 약인데 약성이 덥겠어요? 차겠어요? 이것은 어린아이 같은 질문이지만 六經은 이렇게 쉬운 논리로 추론해 들어갑니다. 두통은 주로 火熱에 의한 것이므로 두통약의 성분은 차겠지요? 두통약의 70%정도는 차가운 성분이라는 것이 우리 한방의 추리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頭無冷痛, 腹無熱痛‘, ‘머리는 차가와서 아픈 법이 없고, 배는 뜨거워서 아픈 법이 없다’ 이건 치료의 대원칙입니다. 이번엔 利尿劑를 봅시다. 이뇨제는 맛이 어떨까요? 담담하지요. 그러면 왜 이뇨제의 맛이 담담할까요? 이론상 淡味行氣시키고 한다고 하지요. 木通澤瀉車前子燈心 등 일체의 이뇨제는 그 맛이 담담합니다. 그런데 같은 이뇨제라 해도 車前子는 몸이 허한 사람의 몸기운을 깎지 않고 이뇨를 시키고 싶을 때 쓰고, 木通은 성분이 강하기 때문에 좀 건강한 사람에게 쓰는 겁니다. 淡味行氣시키고 利尿시키는 작용이 있지만 그저 淡味 하나로만 외워서는 곤란합니다. 그 담담한 맛중에서도 輕重을 가릴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附子를 먹으면 몸이 더워진다는데 그렇다면 厥陰少陰太陰少陽陽明太陽六經 중 어디로 들어가겠습니까? 少陰 또는 少陽으로 들어갑니다. “方藥合編“에서 附子藥性을 보면 (手少陰命門三焦也… )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命門, 三焦少陽입니다. 이렇게 附子少陰經少陽經으로 들어가므로 몸을 덥게 하는 성질을 가진 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少陰經으로도 들고 厥陰經으로도 든다면 이건 덥기도 하고 風氣도 있겠구나 하고 추리할 수 있지요. 어떤 약의 약성이 시큼하기도 하고, 짜기도 덥기도 한데다, 또 甘味도 있다면 4가지 경락에 들어가겠지요. 神農氏의 혀와 오늘날 건강한 우리의 혀와 다르지 않을텐데 우리 왜 이런 것을 추리하지 못하는가? 그 까닭은 六經四象이 기본적으로 이해되지 못한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것은 手太陽小腸經으로 들어가고, 어떤 것은 手太陽足太陰으로 入經하는 지에 대하여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며, 이 그 경락의 성질과 어떻게 유사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약은 藥性한데도 少陰經으로 들어간다고 해 놓은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 경락을 치료한다는 뜻으로 붙여 놓은 것인데 “本草綱目“에도 잘 설명을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잘 새겨 들어야 합니다. 少陰經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少陰經絡을 치료한다는 말입니다. 즉 해열제나 설사약이라는 말은 똑같습니다.

고전의 내용을 풀이하다 보면 난해한 부분이 많은데, ‘醫者醫也라’ 의사는 그 뜻을 얻어야지 문자에만 매달리면 참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네 부모형제를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했고 한편으로는 “네 부모를 하느님같이 공경하라” 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二律背反的이라고 비판합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율법학자들과 성전에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가 오니까 “저 여자가 누구냐?”라고 했어요. 그러자 어느 신학자가 예수님을 불효자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근시안입니다. 이런 것을 방편설이라고 하는데 여러분들이 방편설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상황을 접함에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때의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는 결코 방편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만은 겸손으로 치고, 너무 열등감에 젖어 있는 사람에겐 자신감을 넣어주는 식으로 상황에 따라 방편을 달리해야 하는데 하나는 攝受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折伏하는 방법입니다. 받아들일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실한 건 깎아주고 한 것은 해 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성질이 급하고 날카로와서 치고 부수는 특징이 있고 또 한 사람은 너무 온후하고 나약해서 남을 살리되 자신을 죽인다면 이 두 사람은 모두 결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無有定法佛法이라’했습니다. 일정한 법이 없음이 깨달은 자의 법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의 법은 단지 불법만으로 제한되지 않고 “黃帝內經“의 법도 되는 것입니다. 세상사에 일정한 법이란 없습니다. 더운 것은 차게, 찬 것은 덥게, 또는이열치열도 있습니다. 산에 불이 났는데 오히려 다른 쪽에 불을 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일정한 법이 없음을 앎이 바로 깨달은 자의 모습입니다. 太陽經이다, 少陽經, 혹은 厥陰經이다 하는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동의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동양의학의 기본철학적 구조는 인생을 유쾌하게 사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유태인의 상술을 보고, “당신은 일하기 위해 먹는 거요. 아니면 먹기 위해 일하는 거요?” 하고 질문을 하면, 유태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먹기 위해서 일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지요. 식사 중에라도 책이나 서류를 봐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식사를 마치자 마자 소화도 되기 전에 책상에 앉기도 하고, 마치 쫓기듯이 허겁지겁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태인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식사는 유유하게. 한두어 시간씩 즐깁니다. 여러분은 먹기 위해 공부하십니까? 공부하기 위해 먹습니까? 공연히 의무감 속에서 공부하지는 마세요. 학문 그 자체가 즐거워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엔 학점도 없고, 아무런 권위의식도 없고 시험의 공포도 없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찾아온 이 기백은 일단 학문하는 태도에서는 100점입니다. 그 만큼 학문하는 태도는 즐거워야 합니다.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진 듯한 의연하지 못한 학문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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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운 육기 2

2.

그러면 경락 체계라고 불리는 이러한 리듬체계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金容沃 교수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인용하여 문제점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김용옥씨는 心包에 대한 의문을 예로 들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흔히 心包를 해부학적인 측면으로 연구 파악하려는 경향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였습니다.

“산림경제” 제1권 P.50에 包絡으로 된 번역문에 주를 달기를 (포락(包絡):심장을 싸고 있는 얇은 막, 즉 心臟膜이다)라고 하여, 包絡心臟膜心包와 동일시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文意를 크게 벗어나고 있지는 않다고 할 것이나 包絡을 곧 심장막과 동일시하는 것은 많은 곡해를 유발시킬 우려가 있다. 高世植을 따르자면 包絡만으로 心包의 뜻이 되며, 包絡이란 정확하게는 心包絡脈을 설명하면서 그 중 一經으로 ‘心主手厥陰心包絡之脈‘을 들고 있는데, “靈樞“가 漢代古經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꽤 오래 전부터 心包心包絡은 동일한 의미로 쓰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주석에 의존치 않고 “內經“의 原義에만 하여 해석할 때 ‘包絡絶‘의 ‘‘가 과연 心包를 정확히 의미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黃帝內經素問卷第三
鈴蘭秘典論篇
第八十二藏之相使(十二藏腑의 서로 부림)를 논하는 곳에서 十二經脈의 하나로서 心包에 해당되는 장기를 心包라 하지 않고 단중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심포와 단중이 동일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데에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해서 “內經素問“이 씌어진 그 당시 心包라는 장기의 개념이 정확히 성립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心包를 심장막이라고 해설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심장막이라고 하면 현대어로서는 꼭 심장의 판막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에 ‘심장을 싸고 있는 얇은 막’이라는 단서가 붙었기 때문에 그러한 오해가 발생치 않는다고 변명할 수 있겠으나,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일반 독자들에게 心包의 해설로서 ‘심장을 싸고 있는 얇은 막’이라는 해부학적 정의 자체가 적합치 못하다는 것이다. 心包라는 장기가 한의학에서 차지하는 총체적 의미가 먼저 밝혀졌어야 했을 것이다.

心包는 결코 심장을 싸고 있는 얇은 막이라는 심장의 부속기관적 해부학적 실체가 아니다. 心包는 심장과 독립된 별개의 독립 장기이다. 즉 한의학의 인체론의 最基本十二經脈 중에서 五臟六腑를 제외한 나머지 하나의 經脈으로서 육부의 三焦에 부응하는 하나의 독립장기가 곧 心包이다. 心包가 과연 실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느냐 하는 것은 역자의 해설처럼 그렇게 간단치 않다. 오늘날까지 心包의 실체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心包라는 장기의 개념 성립 과정이 心包라는 해부학적 실체가 먼저 발견되고 거기에서 시작되는 經脈이 상정되었다고 보기보다는 十二經脈이 먼저 성립하고 난 후에 十二經脈 중 하나에 해당되는 어떠한 기능적 단위로서의 장기가 상정되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생론적 고찰은 중국의학 술어에 대한 매우 중요한 일반가설을 성립시킨다. 즉 한의학에서 말하고 있는 장기의 명칭이 실체적 규정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기능적 규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의학의 장기들은 오늘날 서구 의학에서 발달시킨 병리해부학적 인식 위에서 성립한 실체가 아니라 경락상의 기능을 담당하는 어떠한 개념적 단위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의학에서 말하는 은 곧바로 오늘날의 腎臟(kidney)이라는 실체와 동일시되기 힘든 면이 많다. 은 신장 그 자체라고 보기보다는 先天元氣가 모이는 곳이며, 생식기능과 관련되어 있는 어떠한 기능상의 기관으로, 오늘날의 서양의학적 해부학적 실체로 말하자면 副腎性腺의 복합적 기능을 상징하는 그 무엇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도 오늘날의 脾臟(spleen)과 전혀 무관한 것이다. 현대 서양의학에서 취급하는 비장은 일종의 조혈기관으로, 여기서 적혈구가 파괴되고 헤모그로빈(Hemoglobin)이 유리되어 간으로 수송되어 빌리루빈(Bilirubin)으로 전화하는데, 이 임파성 기관은 한의학에서는 독립장기로 확연히 인식된 적이 없고 개념적으로 의 개념 속에 포섭되는 종속된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內經學에서부터 명시되고 있는 는 오늘날의 의학술어로는 膵臟(pancreas)을 의미한다. 췌장 중에서도 외분비(즉 랑게르한스섬의 기능을 제외한) 관계의 소화효소분비 기능을 지칭하며, 라는 와 상응하는 이다.

우리 속말에 ‘그 녀석 비위도 좋다’라고 할 때 는 모두 에 속하며 모두 소화관계 기관이다. 이 때 는 물론 비장(spleen)이 아니라 췌장(pancreas)이다. 고전 속의 를 ‘비장’으로 번역하는 것은 문자적 동일성 때문에 개념적 동시성을 파괴하는 좋은 일례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장기의 실체성에 관한 문제 또한 번역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이다. 우리 고전상의 한의학 개념을 서양의학 개념과 대비시키는 작업은 일본의 蘭學子(란가쿠샤)들이 화란에서 수입된 의학서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췌장의 란 말도 중국글자가 아니라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의자(擬字)이며, 그들이 Spleen을 낮을 자가 들어간 로 번역하고 pancreas를 새롭게 발견함에 따라 모인다[, ]의 의미를 갖는 자를 고기 변에 붙이어 새로이 만들어 pancreas를 지칭하게 하였다. 췌장의 해부학적 인식은 유명한 蘭學子
衫田玄白(스기타 겐파구 1733~1817)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며, 그 후 우다가와 겐신(宇田川玄眞 1768~1834)의 “醫範提要” (1805)에 라는 글자로 최초로 등장한다. 서양에서도 팽크리아스의 기능을 발견한 것은 최근의 일이며, 19세기 중엽에나 프랑스 병리학자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의 토끼 해부로 인하여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을 역사적으로 검토해 볼 때 우리가 한의학의 술어들을 번역할 때도 함부로 오늘날의 개념으로 단순한 문자상의 동일성으로 인하여 대입시킬 수 없다는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인체에 대한 개념의 토폴로지(topology 사전적 의미로는 지형 지세학을 뜻함.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인간이 가진 개념의 지도를 뜻함. 곧 오운육기란 것이 인간이 가진 하나의 개념의 지도라고 볼 수 있음)가 전혀 다른 가설적 기반 위에 서 있다는 확연한 인식이 없이 그 文意의 정확성이 기술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방의 많은 오류가 이러한 개념적 혼동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임상적 현실 또한 지적됨이 마땅하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서도 ‘心包와 심장막은 같은 것이다’라는 말을 들으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洋方에서 통용되는 해부학적인 용어와 우리가 사용하는 무형적, 기능적, 경락학적인 이름과의 동일시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말하자면 洋方에서 말하는 기관적(organ)이름인 Kidney가 한방의 足少陰腎經과 동일하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舍岩針法강의를 40일간이나 듣고도, 洋方에서 신장염이라고 하니까 “음! 足少陰腎經해야 되겠군” 혹은 위궤양이라니까 “음! 足陽明胃經을 놓으면 되겠군”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한의학을 그만 두십시오!

모짜르트는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사람에게 “전에 피아노를 배우신 적이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하여 배운 적이 있다는 사람에게는 수강료를 두 배로 받고 전혀 배운 적이 없다는 사람에게는 반만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 바둑계의 명인인 사까다 역시 “바둑이 무엇인지 모르고 오는 사람은 단기간 내에 초단으로 만들어 줄 수 있지만 바둑을 좀 알고 오는 사람을 초단으로 만들기는 참으로 많은 기간이 소요된다”고 했습니다. 한의학이라는 이상한 학문을 배우기 위해 들어온 여러분들에게도 五運六氣에 대한 선입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 강의의 총론이 끊임없는 잔소리의 연속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선입견을 배제시키기 위해서이지요. 잡초가 없는 땅이라면 그냥 씨를 뿌리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는 많은 자갈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자갈을 제거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는 거지요. 이렇게 40일을 듣다 보면 “아-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군!” “내 마음을 관찰해야 되겠군” “경락은 모두 을 이루고 있군” “마음은 상대성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역대의 모든 성인이 말씀하신 경전과 “內經“의 원리올시다.

를 팽개치고, 학문도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마냥 洋方의 해부학적인 명칭에 이끌려 병명을 동일시하거나 기관(organ)과 기능을 동일시해서는 안됩니다. 바로 이것을 김용옥교수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의학자가 아닌 분의 이야기를 인용하게 된 것을 저는 수치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권위가 있는 사람이나 옛 성인의 말씀을 비유해야만 인정하려고 하는 여러분들의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김용옥교수의 책을 읽어보면 그는 心包를 깊이 아는 大家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한의학자가 아니니까요 저로서는 오히려 “心包의 개념은 參禪學的으로 이렇게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라고 건의를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하는 여러분들에게는 그 분의 학문태도를 본받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 분은 의문이 많지요. 미국, 중국, 일본 등지로 다니며 공부를 해 보아도 우리나라 학문은 역시 우리말로 해야 된다는 것을 그 분은 인식한 것이지요. 저 역시 의문과 반항과 정열의 학문적 정신을 존중합니다. 괴테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독일어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나의 생각입니다.

그분은 “東洋學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우리 東醫學者들이 해야 할 “內經“의 영역을 마구 침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옳으니 받아들여야지요.

김용옥교수는 “山林經濟(조선 후기 실학자의 한 사람인 홍만선(유암, 1643–1715)의 저작으로 농업과 의학에 대한 연구서)”라는 책에서 번역상의 결점을 발견하고, 이 글을 쓰게 된 것이지요. 산림경제란 책은 의학서적이 아니고 ‘민중 속의 생활, 지혜 안내서’ 정도로 씌여진 책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상당히 탁월하다고 하는 고전의 책 속에서 誤譯을 발견한 것입니다. 지금 중공이나 대만에서도 터무니 없는 번역을 많이 하는데, 그러한 중공이나 대만 책만 번역하면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그 쪽에도 洋方 물이 들어 있는데다 자체적 결함이 없지 않은데 우리는 그저 그것을 번역해서 그들의 뒤만 쫓아가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참으로 주체성 없는 어리석음이지요.

心包는 심장을 싸고 있는 얇은 막이라는 심장의 부속기관적, 해부학적인 것이 결코 아니라 심장과 독립된 별개의 臟腑이다”라고 “內經“을 공부하는 韓醫學者도 하기 어려운 말을 동양철학을 하는 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김용옥 교수의 제자 한 사람이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동양철학을 하려면 반드시 內經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동양철학의 몇 구절도 해석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김용옥교수가 역설했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김용옥교수도 心包의 정확한 지칭은 못했지만 그게 심장을 둘러싼 막이 아님은 간파했습니다.

“아닌 것을 제거하다 보면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고 크리슈나무르티 선생은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으면 “이건 사랑이 아니지 않겠나” 하는 것을 제거해 보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김용옥교수가 心包의 개념을 설명은 못했지만 기존의 개념을 틀렸다고 지적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心包라는 장기의 개념 성립 과정이, 心包라는 해부학적 실체가 먼저 발견되고 나서 心包에서 시작되는 경맥이 상정되었다고 보기보다는, 十二經脈이 먼저 성립되고 난 후에 十二經脈 중 하나에 해당되는 어떠한 기능적 단위로서 心包가 상정되었다고 본다는 김용옥교수의 견해에 어느 정도 동감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화를 많이 내다 보니 그 에너지가 축적될 수 있는 창고가 필요했던 것이지, 화보다 창고가 먼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心包有名無形 또는 無相有用이라고 합니다. 막연하게 나마 권력욕, 지식욕, 명예욕 등 어떤 무형의 욕망을 간직하고 있는 장기가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는 했지요.

옛날 사람들은 心包를 알았는데 우리가 모를 이유가 없지요. 그것에 대한 이미지를 탐사해 들어가 보기로 합시다.

옛말에 “심보가 더러운 놈… 저 놈은 심보가 고약해!”이런 말이 있지요. 머리핀 하나 머리카락 하나의 증거를 가지고 날카롭게 수사를 해 들어가는 수사관과도 같은 날카로운 번득임이 있어야 됩니다. 옛날에 부산에 사시던 어떤 선생님은 제게 “수사관 노릇 3년만 하고 와라. 그러면 내 제자 만들어 주겠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수사관 노릇 3년만 하면 한의학이 금방 이해가 된다는 그 말 뜻을 그 당시에는 이해를 못했었지요. 여러분 김용옥교수의 얘기들을 잘 새겨 들어야 됩니다. 정말 멋있는 말이지요. 논문 중에 최고의 논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용옥교수가 한방의 옆구리를 호되게 걷어찬 겁니다. ‘한방혁명 같은 소린 하지도 마라’ 하고 한방 꽝 걷어찬 것이지요. 차마 눈뜨고 한국 한의학을 보아줄 수 없어서 誤譯된 것을 비판함으로써 서양과학의 똥이나 빨고 있는 우리의 실상을 호되게 질타한 것입니다. 지금 우린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참으로 수치스런 이런 일을 당해서는 안됩니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으면 학문적으로라도 인정을 받아야 되는데, 지금 한의학자들은 어느 한 쪽도 인정을 못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무면허 돌팔이도 덩달아 대학교육을 얕잡아보고 있는 현실이지요.

어쩌면 한의대 나온 사람들이 五兪穴(사지의 원단(상지는 주부 이하, 하지는 슬부 이하)에 있는 상용 혈위의 총칭으로, 이들 혈위는 임상상 거의가 비교적 상용되고 있는 유효한 혈위이다)도 못 외우고 十全大補湯(이 방은 인체의 기혈, 음양, 표리, 내외가 모두 허한 경우에 사용하는 것으로 사군자탕과 사물탕에 황기와 육계를 보태 열가지 약물로 이루어짐. 십전대보탕이 치료할 수 있는 증상으로는 전신쇠약, 빈혈, 심장쇠약, 위장장애, 몸이 약한 경우, 맥이 약한 경우 등)도 못 외우느냐고 합니다. 이건 정말 문제입니다. 반성해야 됩니다. 이 모두는 선배들이 뿌린 업인데 지금 그것을 불쌍하게도 여러분들이 받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그래선 안되겠지요. 학문적으로 혁신이 된 눈으로 새로운 이론체계, 새로운 관점을 후배들에게 제공해 드리세요. 그리하면 서서히 세대교체가 일어나면서 한방이 개혁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김용옥교수가 주장하는 관점에 전적인 동감의 의견을 표명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心包를 추적하는데 있어서 三焦와 상응이 되는 기관이라고 하는 것 만으로는 불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五運六氣學經絡學的인 개념을 혼합시켜 얘기를 하면, 心包五運上
요, 六氣上으로는 手厥陰, 즉 厥陰이라는 장기의 개념이며, 三焦 역시 五運上
이며 六氣上으로는 手少陽
三焦, 즉 少陽이라는 개념의 장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五運上으로만 관찰해 보면 心包, 三焦는 물론 심장, 小腸이 모두 에 속하게 되지요. 그러나 六氣的으로 따져보면 같은 라도 少陽相火少陰君火가 다르고, 五行上心臟, 小腸心包, 三焦가 별개의 개념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추리할 수 있습니다. 심장과 소장이 五運上 둘 다 이지만 六氣와 서로 어울려 돌아갈 때는 手少陰心經手太陽小腸經으로 표현이 됩니다. 그러므로 六氣的인 관찰에 들어가서는 少陰君火太陽寒水라고 하는 전혀 상반된 개념이 심장과 소장 경맥의 상황을 표현해 주게 됩니다. 이 차이점, 이 딜레머의 극복은 六氣개념의 해석으로써만이 가능합니다. 五行上 같은 라 하더라도 위의 경우처럼 六氣상의 개념을 활용하지 않으면 그 경맥의 흐름을 추론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예를 한 가지 들어본다면, 여러분은 흔히 신장을 五行上
라고만 알고 있는데 六經的으로 보면 足少陰腎이 됩니다. 그렇다면 生長化收藏, 春夏秋冬, 相生相克에 해당하는 五行上의 개념인 로만 판단하느냐, 아니면 少陰君火의 개념으로 판단하느냐는 무척 어려운 문제입니다. 또 少陰君火만 하더라도 경맥상 手少陰足少陰으로 나뉘어 존재하므로 이렇게 둘로 나뉘어 존재하는 근거는 더욱 더 세밀한 분석을 필요로 하게 되지요. 이러한 고찰이 되고 있지 않는 기존의 한의학은 다리가 불구자인 상태로 한의학에 접근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정적인 차원에 있는 六經과 현대적으로 언급되는 리듬(신체, 감성, 지성) 그리고 六氣的인 관찰과 유물적, 유심적 관찰을 도표화 시킨 것을 일단 배정을 하고 외우셔야 합니다.


위 도표를 보면 돼지[]부터 시작하면 厥陰少陰太陰少陽陽明太陽으로 변해가지요. 그러나 이 순서가 실질적으로는 얼마든지 다른 양상으로 변해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명예욕이나 지식욕을 많이 가진 사람[厥陰之氣]이 나이가 들었을 경우, 반드시 색을 밝히거나 쾌락을[少陰之氣] 추구하게 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요. 다만 그렇게 되기 쉽다는 것일 따름이지요.

그런데 명예욕, 지식욕, 혹은 색을 밝히는 것이나 재물에 집착하는 것 등의 이런 모든 것을 일컬어 소유욕, 즉 ‘먹는 행위’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렸을 때 엄마 젖을 충분히 먹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성장 후 담배를 많이 피우지 않으면 욕구불만 되기 쉽답니다. 또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면 아쉬운 대로 자기 혓바닥이라도 빨게 됩니다. 그래서 관상학상 자기 입술을 자꾸 빨아대는 사람은 음탕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자들이 길을 가다가 멋진 남자를 보면 깊이 숨을 들어 마시지요. 이것 역시 소유욕의 범주에 속합니다.

왜 담배가 몸에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피워대는지 아십니까? 계속해서 밥만 먹고 변을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을 변비증 환자라 하지요. 그런데 계속 지식만 얻고 망각을 모르는 사람을 두고는 변비증 환자라 하지 않고 오히려 ‘유식하다’, ‘기억력이 좋다’고 합니다. 도가에서 볼 때는 이 또한 병자입니다. 이렇듯 앎을 저축시킬 뿐, 망각의 통로로 배설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手少陽
三焦經으로 들어가는 담배 같은 것을 피우게 되지요. 그것은 변비증 환자가 자기가 먹은 음식에 비하여 아주 조금 변을 보는 것이나 같지요. 바로 약물의 힘을 빌어서 三味에 빠지는 것입니다.

六經 중에도 이 붙은 것은 대체로 하는 성질이 많습니다. 먹기만 하고 배설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불행이 싫으니 太陰經絡만 발달되었으면 좋겠어. 陽明經絡(태음경의 반대개념)은 없으면 좋겠어”, “나는 그냥 만나기만 하면 좋겠어, 이별은 싫어!”, “난 무엇이든 알고만 싶어, 모르기는 싫어, 기억력이 남들보다 월등하면 좋겠어!”

바로 이런 사람들이 바보지요. 마음의 상대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식은 얻어서 쓰고 나면 버리세요. 헤어짐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나에게만은 이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나 욕심은 無常(일정하게 고정되지 않음)합니다. 그래서 석가께서는 諸行無常이라 하시며 모든 것은 항상된 것이 없다고 갈파하셨던 것입니다. 노처녀는 신랑감을 얻고자 갈망하다가, 되지 않으면 그 구하고자 하는 욕심[少陰欲]이 빵, 우유, 아이스크림, 커피, 과일을 먹어 치우는[太陰欲] 쪽으로 전변되기 쉽습니다. 노처녀가 곧잘 살이 찌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또한 지식욕이나 권력욕, 명예욕을 가진 사람이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 어느 날 전혀 엉뚱하게 을 밝히는 경우가 많습니다(厥陰欲少陰欲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될런지…) 이상의 여러 욕심들은 표현만 다르게 되었을 뿐 근본은 다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욕망을 스스로 잘 알지 못할 뿐더러 무의식 중에 감추며 살아 갑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저는요. 여자만 보면 지레 몸이 움츠러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학문 빼면 쓰러지는 사람입니다” 그로부터 10년 후…(五運六氣를 보면 어쩔 수 없이 12년 내에는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을 하지요. 짧은 주기로는 6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선생! 여자 맛이 어이 이리 좋소. 거참! 신통하지…” 하다가 얼마 후에는 “純粹理性이고, 비판이고, 칸트, 헤겔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하더니, 그로부터 10년 후… “저는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저에게 한표를…” 아 글쎄 권력자가 되어 있습니다. 웃기는 이야기지요. 인간이란 이렇게 가변성의 동물입니다. 그로부터 또 10년 후… “세상 사는 재미란 그런 게 아니야 그저 돈 모으는 재미가 최고지…” –은행, ××은행… 아침 일찍부터 그저 은행을 들락거리며 돈이란 돈은 모두 통장에 저축하기가 바쁩니다. 이게 인간이 가진 대표적인 욕망의 변형이올시다.

어느 뚱뚱한 친구 하나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도무지 욕망이 불만을 수반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먹을 것만 있으면 아무 바램이 없어요. 저는 또 생전 화를 내 본 적이 없습니다. 욕망이 불만을 수반한다는 따위의 말씀은 화 잘 내는 저 사람에게 나 하세요” 그런데 이 뚱뚱한 친구가 맛있게 먹는 음식을 한 번 빼앗아 보세요. 그 누구보다도 격분하여 화를 냅니다.

“저는요. 성질이 조금 급하긴 해도 절대로 욕망은 없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미묘한 동물이므로 식욕이나 색욕이 없다 하여도 자존심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사람에게 자기가 연구한 학문체계를 한 번 부정해 보세요. 혹은 그 사람의 종교관을 부정해 보세요. 천벌 받을 놈이라고 밤을 새워 욕을 하고도 분을 못 풀 것입니다. 아니면 기도를 합니다. “주여! 저 불쌍한 사람을 용서하세요…” 말로만 용서지, 속에서 끓는 화를 억지로 눌러 두고 있는 거지요. 이게 바로 위선입니다. 우리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자리한 종교적 Ego, 정치적 망상,… 이런 것들까지 이해해야 하므로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깨어있지 않으면 마음의 無常性, 相對性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참으로 어렵지요. 여러분들도 지금 웃고 있지만, 그것은 여러분들 마음 속의 어떠한 위선을 감추기 위한 속임수로서의 웃음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자! 그러면 이 心包三焦, , , 心臟小腸, 大腸, 膀胱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감정적 측면이 무엇인가를 고찰해 보기로 합시다.

 
 

識情

識情六經的
觀點


六經的
觀點


心包

不識

三焦



失望挫折









小腸

()



大腸




膀胱


肯定


不定

위에 있는 이 도표는 외우면 안 됩니다. 이것은 마음의 전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것입니다. 우선은 위 도표를 개의치 말고 제 이야길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주인공이 되어 제 이야기에 출연해 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과 학생하고 자주 만나면 헛 소문이 떠도니, 어느 명문대학 애들과 미팅을 하고자 어울린 한의대 여학생 한 무리가 있다고 하는 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이 이야기는 마음의 전체성과 미묘한 심리변화, 욕망 등을 포착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꾸민 – 講師
金烏가 지어낸- 것일 뿐입니다).

남학생 열 다섯 명, 여학생 열 다섯 명이 다방에서 만났습니다. 서로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눈은 다소곳이 내리깔고는 얌전한 모습들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이미 다 훑어봤습니다. 그런데 유수한 명문 대학생이라 해서 기대가 컸었는데 막상 보니 실망이 커요. 15명 모두 한결같이 마음에 들질 않아요. “오늘 실망이다. 얘!” “대강 놀다 가지 뭐” 고개 푹 숙이고 수줍어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온갖 생각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파트너가 정해졌습니다. “저는 경상도 안동의 양반으로서… 미래에는 어쩌고…” “저는 술도 안 먹고… 담배도 못하고…” 대답은 “네. 네…” 하면서도 속으론 “남자 자식이 술 담배도 않고 무슨 재미로 사냐? 웃기고 있네” 합니다. 기분이 나지 않으니 차 맛도 없고, 그저 심드렁하니 돌아오는 길에 굳이 묻지도 않은 하숙집 전화번호까지 손에 쥐어 줍니다. 다음날 친구들과 어울려 종로에 나갔는데 어디서 뛸 듯이 반가운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말이 들리고, 그 지겨웠던 어제의 파트너가 등장을 합니다.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실례지만 누구신데요?” “예에? 어… 어제 미팅에서 만났던…” “전 기억이 안 나는데요?” (기억이 안 나기는 그냥 모르는 체 무시하는 거지)

이런 상황은 저(金烏)와 여러분 사이에서도 종종 생깁니다. 밖에서 우연히 대폿집 같은 데에서 만났을 때 “안녕하십니까? 금까마귀 선생님!” 하면 “저는 모르겠는데요” 합니다. “제가 선생님 강의를 들어서 선생님을 아는데요…” “글쎄. 전 잘 모르겠군요”라고 대답합니다(사실 여러분이 제 무엇을 안다는 겁니까?) 자! 이쯤 되면, 여러분 심경에 어떤 생각이 들어가게 됩니까? 금새 기분이 틀어지지요. 안다는 사실이 가진 쾌락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 자네. 기억하지. 강의 때마다 맨 앞에 앉아서 파편(침) 많이 맞았지”라고 말하면 자기를 내가 알고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 하나로 마음이 감동으로 물결칩니다.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건 우리 심중의 작은 감정 하나에 불과합니다. ‘識情‘이라고 하지요(주의를 기울여서 강의를 들어야 합니다). 자! 한글자 (*을과 지로 합성된 글자)를 써볼까요!

(안다는 것은 위의 글자 입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자입니까? (독자 여러분도 알아 맞춰 보세요). ‘을’자, ‘지’자? … 무슨 자? …(대답이 가지가지 입니다). 이때 한 친구가 말하기를 “모르겠는데요” 예! “모르겠는데요”가 정답입니다. 이런 한문은 옥편에 없습니다. 제가 처음 써 본 글자이니까요. 그런데 여러분은 모른다고 말하기는 싫고, 모른다고 하면 왠지 수치스럽고 해서 자꾸 답을 주워 섬기려 합니다. 이 마음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그 마음은 여러분들이 집착하는 ‘앎’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아까 중단되었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모르겠노라고 그럴듯하게 시치미를 떼자, 당황해 하던 그 남학생은 고개를 푹 숙이고, 청바지에 손을 깊이 넣고는 자신의 매력 없음을 한탄하며, 어깨까지 축 늘어뜨리고 힘없이 걸어 갑니다. 그 순간 여학생의 가슴이 찡하게 아파왔어요. “내가 순진한 남자를 너무 희롱했나봐” 이번엔 그의 장점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여보세요. 돌석씨”하고 불렀어요. “예? 예!” 이 친구가 되돌아 봅니다. “아이- 미안해요. 여자가 처음부터 아는 척 할 수 있나요?” 모성애가 발동을 했는지 남자 사기를 돋워 주는 사이 두 사람은 조금 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 안다는 사실, 이것은 참으로 미묘하고도 다양한 감정을 연출시킵니다.

코미디언이 “지금부터 지리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인도의 수도인 런던에서 어쩌고 저쩌고…” 하면 사람들은 와- 하고 웃습니다. 청중들이 왜 웃습니까? 서너 살 된 애들은 웃지 않는데… 인도의 수도가 런던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의 ‘아는 체’하는 의식을 역 이용하는 사람이 바로 개그맨 부류의 직업인 입니다.

제가 어느 대학교 강의 첫 시간에, 바지를 양말에 집어넣고 Y사쓰를 바지 밖으로 빠져 나오게 해서 입고 들어갔습니다. 학생들이 웃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웃든 말든 저는 계속 강의를 했습니다. 웃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들의 보편성, 상식을 초월한 옷차림을 했다는 것이 이유이겠지요. 코미디언들도 마찬가집니다. 실수나 불완전성을 연출하는 거지요. 너무 완벽하면 매력이 없거든요. 아주 잘 생기고, 달변이고, 돈도 잘 쓰고 하면 여자들이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머리칼이 좀 부수수하거나, 눈꼽이 끼었다거나,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하나쯤 끼어 있어야지, 몸에서 향수 내음이 나고 온통 유명메이커 옷으로 치장을 한 사람은 꺼립니다. 옛날 서양의 왕궁에서는 광대를 두고 있었습니다. 어느 사회나 단체 내에도 웃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오늘날 왜 그렇게도 많은 수의 개그맨들이 인기를 얻을까요? 어린아이들은 왜 그렇게도 개그맨을 좋아할까요? 어째서 실수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코미디언이 인기가 좋겠습니까? 이것은 아는 일에 지친 사람들에게 상대적인 것을 배려한 신의 조화입니다. 아는 일 만큼이나 모른다는 것이 중요함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어쨌거나 위의 두 사람은 안다, 모른다의 시비를 넘어선 사이가 되었습니다.

여학생이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자기도 뭐 그리 남다른 데가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래! 저 정도 남자면 한 번 교제를 해 봐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떠한 뜻을 세우게 되면 어떤 차원을 지나게 됩니다. 제가 강의를 한다고 했을 때 여러분들은 들어볼까 말까 하고 마음의 갈등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선배들의 조언도 구해 보고 40일 동안의 투자에 대해 손익계산서 작성도 해 보았을 것입니다. 결정을 내릴 때까지 많은 생각을 해보고 이 강좌를 듣기로 결정했을 것입니다.

여학생 역시 어제까지는 마음이 없다가, “한번 교제를 해 볼까?” 하고 뜻이 서려 하자 그 못생기고 밉상이던 상대가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합니다. ‘명문대학을 다닐 정도면 공부도 꽤 했을 것이고, 마음 중심도 서 있을 거야. 힘없이 돌아서던 모습으로 보아 의외로 순진한 것 같애. 그래 사람이 너무 실리적이어도 곤란해’ 아직 연민, 사랑, 그리움 등의 단계는 아니지만 만남의 시작에 해당하는 ‘뜻’이 일어나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보세요. 돌석씨”하고 불렀을 때 반가와서 어쩔 줄 몰라하던 돌석의 모습이 이제는 밉기는커녕 슬며시 흐뭇해지기 시작합니다. 바야흐로 두 사람은 서로의 전공에서부터 시작하여 취미, 인생관까지 서로의 뜻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서로가 조금씩 확인을 하기 시작합니다(벌써 이 단계에서 소유감각이 개입됨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 하나가 이 여학생에게 돌석이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얘. 돌석씨란 사람 어때?” “응. 그저 그래” 별 사심없이 말합니다. “나 파트너가 필요한데 내일 하루만 파트너로 하면 안되겠니?” “뭐? 뭐야” 친구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여자의 마음 속에서 원인 모를 거부반응이 일어납니다. 개인적으로는 별 욕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내가 아는 사람을 네가 알려고 해?’ 하는 상황에 이르자 소유욕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툭 하고 튀어 나왔습니다. “얘. 별 사이도 아니라면서 뭘 그러니?” “얘! 그래도 네가 그럴 수 있니?” 시기 질투를 느끼진 않지만 주기는 아깝고 자기가 갖기는 또 좀 그렇고 한 이 식정(識情)의 단계에 벌써 미묘하나마 소유감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럭저럭 두 사람은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각자 자기네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게 됩니다. “야! 난 6년 후면 무위도식해도 또 내가 술 먹고 병이 나도 다 고쳐줄꺼고…”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레코드 음반을 선물해야겠는데 재즈가 좋을까, 클래식이 좋을까?”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친구와 연구도 하게 됩니다.

결국 베에토벤 Symphony 5번 디스크를 사서 여자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물이 여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상대방에게 정확히 맞는 선물을 한다는 것은 여러 의미와 시사성이 내포된 것입니다). 아주 만족해 하는 여자를 보고 돌석이 말하기를 “말자씨가 기뻐하시니 저도 기쁩니다. 그런 뜻에서 제가 오늘은 disco hall에 가서 한 잔 사겠습니다. 춤이나 한 번 추실까요?” “숙녀에게 무슨 실례의 말씀이에요? 나는 디스코 출 줄 몰라요” 이렇게 하는 사이에 둘 사이는 점점 깊어갑니다. 이름과 성을 알고 난 뒤에는 ‘六感()’의 접촉이 시작됩니다. 이게 바로 12인연론입니다. 사람들은 이 여섯 감각기관의 접촉에 의해 인식하고 뜻을 세우게 됩니다. 결혼 동기를 예로 들어보면, 얼굴이 예뻐서, 목소리에 반해서, 그 여자의 향수가 어릴 적 어머니 분 냄새 같아 마음이 편안해져서…이렇듯 접촉에는 뜻[]이 따르게 되고, 뜻이 생기면 갈등을 하다가 좌절감 또는 성취감을 느끼게 됩니다. 뜻에 뒤따르는 상대개념으로, 뜻을 이룬 성취감을 脾主思, 脾主意로 본다면, 뜻을 이루지 못한 실망감 좌절감은 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六經的으로 이해하셔야 됩니다)

그럭저럭 정이 깊어져 뻐드렁니도 늠름해 보이고 빈대코도 화통해 보이게 되자 그 남학생을 생각함에 가슴 울렁거리는 즐거움이 동반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일전에 돌석이를 파트너로 빌려 달라던 여자가 돌석이와 어딜 놀러 갔다 왔다고 자랑을 합니다. 격분한 말자는 당장에 돌석을 만나러 갔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있어요?” “어! 말자씨 모르셨군요. 그 친구(말자친구)가 말자씨 허락을 얻었노라고 하도 간청을 해서…” “그런 적 없어요” 화가 난 말자를 바라 보며 돌석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돌석은 빙그레 미소하며 “말자씨에게 그런 성격이 있는 줄 몰랐는데요!” “뭐예요? 화난 사람 약 올리는 거예요?” “아– 아닙니다. 성낸 말자씨 얼굴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사실은, 그 날

저는 나갔다가 제 친구를 소개 해주고 바로 돌아왔습니다. 말자씨를 두고 제가 어찌…” 이 말을 듣고 말자의 마음은 봄눈 녹듯 풀렸습니다.

이 상황이 세 번째 단계인 ‘‘와 ‘‘. 즉 기쁨과 슬픔의 단계입니다. 이 때의 분노는 아직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요. 다만 이 날의 일을 계기로 서로의 소유감각이 좀 더 짙어졌을 뿐. 이날 이후로 두 사람은 손목과 팔짱을 넘어섰습니다. 손목→팔짱→어깨→허리로 손을 두는 위치가 바뀌어갔습니다.

“말자씨 우리 어디 여행이나 한 번 가실까요?” 이런 제의가 자연스러워지던 어느 날 두 사람은 1박 2일 코스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무슨 놈의 차가 그리도 복잡한 지 말자 히프를 이 놈도 툭 건드리고 저 놈도 툭 건드리는데, 보면서도 말리지 못하는 돌석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어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돌석은 말자를 다그칩니다. “아니! 여자가 그렇게 둔해서 어떻게 해?” “난 자기하고 얘기하느라 몰랐어” 그래도 화를 진정치 못한 돌석은 “말자는 내가 얼마나 속을 태웠는지 모를거야!” 말자는 ‘드디어 돌석씨가 나에 대한 사랑에 빠졌구나’ 전에는 바닷가에 가면 생선회 생각밖에 안 나더니 이젠 상대방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 때쯤이면 자기 파트너가 지나가는 남자나 여자와 눈만 마주쳐도 속에서 화가 치밉니다. 바야흐로 두 사람은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됩니다(道家에서는 점차 위험해 진다고 하지요). 만나기만 하면 으슥하고 어두운 공원 구석을 찾게 되고, 남들이 종로 2가를 팔짱만 끼고 가도 욕하던 사람들이 허리를 껴안고 몸의 거의 절반을 밀착하고 걸어가는 파렴치한이 됩니다.

바로 ‘‘와 ‘‘의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이젠 하루만 못 봐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함께 걷던 오솔길, 노을이 붉게 물든 바닷가, 그가 들려주던 시, 이 모든 것들이 알알이 추억으로 아로 새겨지기 시작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자신의 소유인 양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약속 장소에 말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어요. 당황한 돌석은 어쩔 줄 몰라합니다. “약속장소가 틀렸나?” “아닌데” 30분, 1시간, 2시간이 지나고… 그런데 저만치서 말자 동생이 헐레벌떡 달려옵니다. “언니가…흑흑…언니가 백혈병으로 ○○종합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어요” 이젠 눈물이 등장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애간장을 끊는 애절함. 이 애절함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그것은 쾌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쾌락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의 중간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이올시다.

그런데 일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죽지 않고) 더 진전이 되어 서로 결혼을 하는, 즉 바로 욕망의 단계입니다. 결국, 이 지상세계는 곧 욕망의 세계입니다. 불교의 三世論에 보면 欲界 위에 色界, 色界 위에 無色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곧잘 자기 소유를 강조합니다.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식…어떻게 내 아들이 될 수 있습니까? 그저 부모의 몸을 잠시 빌어 태어났을 뿐인데 어떻게 부모의 소유가 될 수 있습니까? 죽으면 한 줌의 흙도 못 되는 이 장래의 시체를 누구 것이라고 소유를 밝히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옛날 일곱 賢女가 숲을 거닐다가 한 구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한 여자가 “시체는 여기 있는데 주인은 어디로 갔는고?” 이 말에 일곱 사람은 일제히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앞의 두 사람과 같이 애절함과 슬픔이 지대하다 보면 閉氣가 되고, 또한 가 소멸되어 중병이 생기게 되고 더불어 공포가 수반됩니다. 그래서 욕망과 공포는 상대적입니다. 배우자에 대한 욕망이 너무 크게 되면 의처증과 의부증이 생기게 되어 구타와 구속의 공포를 초래하게 되고, 소유욕이 강한 사람일수록 집 주위를 삼엄하게 경비합니다. 이런 것의 근본이 바로 공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참고로 정리를 해 보면 마음이 움직이는 앎의 성정은 心包경에 해당하고, 모른다고 하는 마음의 움직임은 三焦經에 해당이 됩니다. 어떤 일에 뜻을 가짐의 심적 상황은 脾經, 그 뜻의 좌절은 胃經, 기쁨의 마음은 肝經, 분노는 膽經, 사랑의 감정은 心經, 싫어하고 꺼리고 경계하는 것은 小腸經, 이렇게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각론에 가면 상세히 다룹니다. 그리고 왜 이런 식으로 장황히 설명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차차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처음엔 미미하게 얼굴을 익힌 정도에서, 뜻을 가졌다가, 차차 서로 즐기며 기뻐하다가, 사랑하게 되고, 그 다음엔 아주 즐김을 탐[快樂]하다가, 급기야 욕심을 내게 되는 여섯 단계의 마음 유동의 ‘無常性‘을 깊이 공감하면 굳이 臟腑와 결부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마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예로 들어드린 이 이야기는 앞으로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어떠한 관계에 있을 때 스스로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그때 그때 상황이나 표현형식은 다 달라도 그것들은 이 여섯 단계의 마음 변화 속에 다 포함이 될 것입니다. 옆집 처녀에게 연모의 정을 품고 있는데 어느날 그 여자가 시집을 갔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파 며칠씩 술을 마신다거나, 오드리 헵번을 열렬히 사모하여 방안에 그 여자 사진을 붙여 놓았다가, 다른 영화에서 어느 남자 배우와의 키스신을 보고는 그 여자의 사진을 뜯어내며 이틀 밤을 울었던 저의 경우, 그저 이미지만을 대상으로 했음에도 이렇게 질투가 하는 법입니다. 하물며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이 현실에서야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면 그것이 일게 된 배경을 찾아 보세요. 애초에 내가 이 일을 접하여 알지 못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생기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원점으로 돌아가 보세요. 시중에 유행하는 T M명상술의 첫 수련과정이 어떤 생각의 처음을 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로 향하자고 하는 것은 識情, 즉 소위 안다, 모른다 하는 識情에서부터 욕망과 공포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관찰하고자 하는데 그 뜻이 있는 것입니다. 수행이 잘 된 사람일수록 욕망과 공포가 없어 얼굴이 맑지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욕계이므로 질병이 많이 생깁니다. 공포로 인해 몸이 해지고, 부질없는 시기, 질투로 인해 結石이 생기고, 쓸데없는 의심, 생각이 너무 많아 가 약해지고 소화기능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현상은 유심적인 부분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강의를 그저 웃음으로 넘기지 말고 전체적으로 깊이 살펴보시면 여러분들 스스로 그 주인공들과 조금도 다른 사람이 아님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나 역시도 常情에 매여 있구나! 나 역시도 見物生心인 걸 보니 내게도 도둑놈의 기질이 있구나! 아, 내가 연애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 역시도 배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구나! 왜? 여러분들 몸 속의 경락이 모두 그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태까지 사용하지 못한 경락을 없는 것으로 알고 ‘나는 그렇지 않다’ 하며 스스로 예외의 존재인양 착각하지 마십시오. 깊이 느끼고 알아서 인정하게 되면 常情, 盜性, 戀愛…등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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